낮잠
칠월에 핀 능소화는
주황이 그림자다
혓바닥 무늬처럼
천연스런 색이란 듯
벌 나비 통째로 취한 붉은 빛을 들인다
꽃대는 넝쿨보다
휘청휘청 감기면서
꽃망울 송이송이
더듬어 스민 햇살
꼭 다문 꽃잎을 벌려 입 안 가득 번진다
옷섶을 풀어헤친
곤한 듯 나른한 잠
담장 아래 고양이가
발을 얹고 짚는 허공
바위를 감아올린다
꿈에서도 힘을 쓴다
/이석구(1960~ )
능소화가 도처에서 눈길을 잡아끈다. 능소화는 먹구름 다 쏟은 하늘에 태양이 작열할 때면 더 농염해지는 여름의 꽃이다. 진한 주황의 꽃빛에 나무를 휘어 감고 오르는 습성 때문일까, 능소화는 묘한 관능을 풍긴다. 그래서 그림자도 주황일밖에 없는 칠월의 능소화에 자꾸 눈이 젖는가.
더위에 지쳐가는 한여름, 비라도 내리면 저항이 불가능하게 낮잠의 유혹이 끈끈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능소화는 '고양이가 발을 얹'는 허공을 온몸으로 짚어가며 또 뜨겁게 타오른다. '꿈에서도 힘을' 쓰는 것은 도리 없이 감겨드는 저 능소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옷섶을 풀어헤친 곤한' 낮잠에 빠졌다 나오면 침을 좀 흘려도 좋으리. 창밖의 능소화가 환한 낯빛으로 보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으려니.//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