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균재(黃鈞宰)가 남긴 '술애정(述哀情)'31칙은 인생을 살아가며 스쳐간 슬픈 광경을 해학을 섞어 나열한 글이다. 몇 항목을 소개한다.
"게를 삶는데 솥 안에서 게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낼 때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煮蟹聽釜中郭索聲, 豈不哀哉!)" 안타깝다. "처마 밑에 거미줄이 분명하게 있건만 파리와 모기는 어리석게도 여기로 뛰어들어,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檐前蛛網, 自在分明, 蠅蚊昧昧投之, 欲脫不得, 豈不哀哉!)" 민망하다. "뱃속에 든 아기나 강보에 싸인 아이나 백년도 못 되어 같이 흙으로 돌아갈 터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胞胎中物, 襁褓中人, 不及百年, 同歸塵土, 豈不哀哉!)" 허망하다. "어찌해 볼 수 없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할 때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無可如何時, 作解脫語, 豈不哀哉!)" 안쓰럽다.
끓는 냄비 속에서 달그락대는 게의 집게발, 거미줄에 걸린 파리와 모기의 체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썩어 흙이 되는 세월, 어찌할 수 없어 도리어 초연해지는 간난(艱難). 이런 광경은 슬프기는 해도 감내할 만하다.
이런 것은 어떤가? "권세 높은 이의 집으로 달려가, 방에 들어갈 때는 뱀처럼 기어 들어가서,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납게 째려보며 나오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奔走權貴之家, 入室蛇行, 出門虎視, 豈不哀哉!)" 들어갈 때는 뱀처럼 땅바닥을 설설 기며 온갖 비굴한 자태를 짓다가(蛇行), 문을 나설 때는 범처럼 사나운 기세로 제가 그 사람이라도 된 양 으스대고 거들먹거리며 나온다(虎視). 속물들! 선거철만 되면 늘 보는 광경이다.
명나라 육소형(陸紹珩)은'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서 이렇게 말한다. "권세 있는 사람의 문간을 바삐 드나들면 저는 영광스럽게 여겨도 남들은 몰래 욕을 한다. 명리(名利)의 각축장에서 마음을 졸일 때, 조심조심 그 괴로움을 못 견딜 것 같은데도 자신은 도리어 즐거운 듯이 한다(奔走于權幸之門, 自視不勝其榮, 人竊以爲辱. 經營于利名之場, 操心不勝其苦, 己反似爲樂)." 남에게 욕먹는 것은 큰일이 아니다. 내 큰 뜻을 펴려는데 이만한 수고쯤이야 오히려 즐겁다. 그런데 그 큰 뜻이란 것이 뱀처럼 기어 제 잇속 차리고, 범처럼 으르렁대며 남의 것을 빼앗는 짓뿐이라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도처에 권력이 무너지는 굉음뿐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