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남아 임제(林悌,1549~1587)가 술에 담뿍 취했다.가죽신과 나막신을 짝짝이로 신고 술집 문을 나선다. 하인이 말한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신을 짝짝이로 신으셨어요." 임제가 대답한다. "이눔아! 내가 말을 타고 가면 길 왼편에서 본 자는 가죽신을 신었군 할 테고, 오른편에서 본 자는 나막신을 신었구먼 할 테니 뭐가 문제냐? 어서 가자."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나오는 얘기다.
짝짝이 신발은 누구든 한눈에 알아본다. 그런데 말 위에 올라타면 한순간에 모호해진다. 사람들은 제가 본 한쪽만으로 반대편도 그러려니 한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결국 진실 게임으로 번진다. 우기다가 사생결단의 싸움이 된다. 막상 당사자가 말에서 턱 내리면 둘 다 머쓱하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종업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었던 임신부는 말다툼을 하다가 몸싸움까지 했다. 분해서 인터넷에 배를 여러 번 걷어차였다고 글을 올렸다. 자신의 잘못은 애초에 없는 듯이 썼다. 업주가 달려와 덮어놓고 영업점 폐쇄를 선언하고 납작 엎드렸다. 뒤늦게 필름을 돌려보고 종업원의 말을 들으니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사과를 취소한다고 선언했다. 고소해하던 임신부는 별안간 날벼락을 맞았다. 중년의 여인은 아이가 달려들어 손에 든 뜨거운 국물을 쏟는 바람에 손을 데었다. 아이는 얼굴을 온통 데었다. 손을 덴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화가 나서 자리를 떴다. 그 사이에 여자는 '국물녀'로 도배되어 범죄인으로 매도되었다.
진실은 뭔가? 다툼이 있었고 문제가 발생했다. 임신부의 말은 지나쳤고,종업원의 대응도 아름답지 않았다. 회사는 진상 파악보다 사과에 급급하더니, 금세 사과를 취소하겠다고 기세가 등등했다. 손을 덴 여자와 얼굴을 덴 아이 부모는 서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것은 분명히 나막신인데 반대쪽에 가죽신을 신었을 줄 어찌 짐작했겠는가? 한쪽에 가죽신을 신고 반대쪽에 나막신을 신는 미친 놈도 있는가? 제 판단만으로 결론지어 단죄하고 죽이자고 달려든다. 그러나 그런가?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 묘한 상황이 참 많다. 시비의 판단이 쉽지가 않다. 왼쪽 오른쪽만 있지 중간이 없다. 명심하라. 시비의 가늠은 중간에 있다(是非在中). 짝짝이 신발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중간은 어디인가?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