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계묘년 초봄 옛 집을 그리며(癸卯歲始春懷古田舍)'란 시는 이렇다. "스승께서 가르침 남기셨으니, 도를 근심할 뿐 가난은 근심 말라 하셨네. 우러러도 아마득해 못 미치지만, 뜻만은 늘 부지런히 하려 한다네. 쟁기 잡고 시절 일을 즐거워하며, 환한 낯으로 농부들을 권면하누나. 너른 들엔 먼 바람이 엇갈려 불고, 좋은 싹은 새 기운을 머금었구나. 한해의 소출은 가늠 못해도, 일마다 즐거움이 많기도 하다. 밭 갈고 씨 뿌리다 이따금 쉬나, 길 가던 이 나루터를 묻지를 않네. 저물어 서로 함께 돌아와서는, 술 마시며 이웃을 위로하누나. 길게 읊조리며 사립 닫으니, 애오라지 밭두둑의 백성 되리라. (先師有遺訓, 憂道不憂貧. 瞻望邈難逮, 轉欲志長勤. 秉耒歡時務, 解顔勸農人. 平疇交遠風, 良苗亦懷新. 雖未量歲功, 卽事多所欣. 耕種有時歇, 行者無問津. 日入相與歸, 壺漿勞近隣. 長吟掩柴門, 聊爲隴畝民.)"
이 중 7, 8구는 천고의 절창으로 꼽는 아름다운 구절이다.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먼데서 불어온 바람이 엇갈려 분다. 새싹들이 초록 물결을 이루며 바람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람은 이쪽에서도 불어오고 저쪽에서도 불어와서 새싹들의 춤사위를 경쾌하게 부추긴다. 일하다 말고 잠시 허리를 펴며 그 광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없이 흐뭇하다.
양묘회신(良苗懷新)! 새싹에 새 기운이 가득하다. "가난이야 족히 근심할 것이 못 된다. 가슴 속에 도를 지니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뿐."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큰 숨을 들이쉬면 알지 못할 생기가 가슴에 가득하다.
막상 세상은 어떤가? 이광정(李光庭)은 "지난 일 감개함 가눌 길 없고, 뜬생각 마음 빈틈 파고드누나. 시름겹게 숨어 사는 근심을 안고, 하릴없이 긴 밤을 지새우도다. 좋은 싹은 김맬 때를 하마 놓쳐서, 가을엔 가라지만 무성하겠지. 도를 추구했건만 뜻은 약했고, 생계를 꾸림조차 외려 아득타 (往事多感慨, 浮念乘情罅. 悄悄抱隱憂, 曼曼度長夜. 良苗失時耘, 秋莠萋已荒. 謀道志不强, 爲生計轉茫)"라고 뜻같지 않은 현실을 개탄했다. 김창협(金昌協)도 "교만한 가라지가 좋은 싹 가려, 김맬 시기 놓친 지 오래되었네 (驕莠掩良苗, 久矣失芸耔)"의 탄식을 발했다.
봄이 왔다. 새싹들이 땅을 밀고 올라온다. 청신한 기운이 대지에 편만(遍滿)하다. 어이 가난을 근심하랴. 쭉정이 가라지가 좋은 싹을 뒤덮지 않도록 부지런히 김매고 밭 갈아야 할 때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