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李植)이 아들에게 써준 편지의 한 대목이다. "근래 고요한 중에 깊이 생각해보니, 몸을 지녀 세상을 사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다. 천금의 재물은 흙으로 돌아가고, 삼공(三公)의 벼슬도 종놈과 한가지다. 몸 안의 물건만 나의 소유일 뿐, 몸 밖의 것은 머리칼조차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해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순순히 바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만약 이해를 꼼꼼히 따지고 계교를 절묘하게 적중시켜 얻으면 속으로는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고, 실패하면 후회를 못 견딜 것이다. 그때 가서 무슨 낯으로 남에게 변명하겠느냐."
또 말했다. "'원유부(遠遊賦)'에서는 '아득히 텅 비어 고요하니 편안하여 즐겁고, 담박하게 무위(無爲)하자 절로 얻음이 있다(漠虛靜而恬愉, 淡無爲而自得)'고 했다. 이 말은 신선이 되는 첫 단계요, 병을 물리치는 묘한 지침이다. 늘 이 구절을 외운다면 그 자리에서 도를 이룰 수가 있다."
이의현(李宜顯)이 말했다."재물은 썩은 흙[糞土]이요,관직은 더러운 냄새[臭腐]다. 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할 것조차 못 된다. 온 세상은 어지러이 온 힘을 다해 이것만을 구하니 슬퍼할 만하다. 탐욕스럽고 더러운 방법으로 갑작스레 부자가 되거나, 바쁘게 내달려 출세해서 건너뛰어 높은 자리에 오른 자는 모두 오래 못 가서 몸이 죽거나 자손이 요절하고 만다. 절대로 편안하게 이를 누리는 경우란 없다. 조물주가 분수 밖의 복을 가볍게 주지 않음이 이와 같다. 구구하게 얻은 것으로 크게 잃은 것과 맞바꿀 수 있겠는가? 이는 아주 사소한 것일 뿐인데도 보답하고 베풀어 줌이 이처럼 어김이 없다. 하물며 흉악한 짓을 멋대로 하고 독한 짓을 마구 해서 착한 사람들을 풀 베듯 하고서 스스로 통쾌하게 여기던 자라면 마침내 어찌 몰래 죽임을 당함이 없겠는가? 하늘의 이치는 신명스러워 두려워할 만하다."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할 사람이 적지 않겠다.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믿고 세상을 농단하던 자들의 말로는 늘 비참했다. 지금까지 제 눈으로 확인한 것만도 수없이 많았을 텐데 자신만은 예외일 것으로 믿다가 뒤늦게 땅을 친다. 아! 너무 늦었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