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운(權巢雲)이 이학규(李學逵· 1770~1835)를 찾아와 자신의 거처 관묘당(觀妙堂)을 위한 기문을 청했다. 그는 40년간 과거에 응시하다가 만년에 포기했다. 머리맡에 당송 고시 한두 권을 놓아두고 자다 일어나 펼쳐지는 대로 몇 수씩 읽곤 했다. 취하면 두보의 '취가행(醉歌行)'을 소리 높여 불렀다.
집 이름의 연유를 묻자, 그가 대답한다. "사물의 이치는 깨달으면 묘하고, 묘하면 즐겁지요. 천기(天機)는 날마다 새롭고, 영경(靈境)이 나날이 펼쳐집니다. 묘함을 깨달을수록 보는 것이 점점 묘해집디다. 그래서 관묘당이라오."
대답을 들은 이학규가 벌떡 일어나 그에게 절을 한다. "선생은 깨달으셨구려. 예전 선생이 갓 과거를 포기했을 때, 다른 사람의 급제 소식을 들으면 낯빛이 흔들리고 마음으로 선망함을 면치 못했었소. 이제 바깥과의 교유를 끊고 참되고 질박함으로 돌아와 남은 해를 자연에 의탁하니, 이것은 선생께서 지금 세상에 대해 이미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오. 선생은 초저녁에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머리털이 엉망이어도 빗질하지 않고(髮亂而忘櫛), 몸에 때가 있어도 목욕하지 않으면서(體垢而忘浴), 편안히 소요하며 자족하시는구려. 둥지의 참새가 새끼를 치고, 나방이 변화하는 것 모두가 선생의 관묘(觀妙)를 열어주기에 넉넉하오. 자식과 며느리가 나물국에 술을 내오니, 이 또한 선생의 관묘를 보좌하기에 충분하구려. 쩝쩝! 부럽소."
해구상욕(骸垢想浴)은 "천자문"의 한 구절이다. 몸에 때가 끼면 목욕할 것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몸이 더러워지면 목욕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데 권소운은 더러워도 씻지 않고, 봉두난발(蓬頭亂髮)이어도 머리 빗을 생각을 않는다. 가난한 살림에 술 한 잔 걸친 후 사물을 깊이 응시한다. 그러자 지난 40년간 벼슬길을 향한 전전긍긍을 놓지 못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깨달음이 사물들 안에서 일어나 날마다 영경(靈境)이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더라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진흙탕이다.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하자고 씻는 물이 또 구정물이다. 씻어본들 뭣하나. 금세 더 더러워진다. 머리를 빗은들 무슨 소용인가. 이가 그대로 바글댄다. 그 꼴을 보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준엄하게 나무란다. 같은 국에 만 밥이다. 바랄 걸 바라야지. 백년하청(百年河淸)!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