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 없이 마음만 부산하다. 정신없이 바쁜데 한 일은 없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의 벨소리가 귀에 자꾸 들린다. 갑자기 일이 생기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왠지 불안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정신 사납다. 고요히 자신과 맞대면하는 시간을 가져본 것이 언제인가?
"세상맛에 푹 빠지면 바쁨을 구하지 않아도 바쁨이 절로 이르고, 세상맛에 덤덤하면 한가로움에 힘쓰지 않아도 한가로움이 절로 온다(世味濃, 不求忙而忙自至; 世味淡, 不偸閑而閑自來)." 명나라 육소형(陸紹珩)이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서 한 말이다. 관심이 밖으로 향해 있으면 바쁘단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음이 안쪽으로 향해야 비로소 한가로울 수 있다. 바쁘기를 구하는 것[求忙]과 한가로움에 힘쓰는 일[偸閑]의 선택은 세상일에 대한 관심 정도에 달린 것이지, 내가 도시와 시골 중 어디에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덕무(李德懋)는 '원한(原閒)', 즉 한가로움의 의미를 풀이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저 작은 마음이 소란스럽지 않은 자가 드물다. 그 마음에 저마다 영위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장사꾼은 이문을 따지고, 벼슬아치는 영욕을 다툰다. 농부는 밭 갈고 김매느라 여념이 없다. 부지런히 애쓰면서 날마다 궁리하는 것이 있다. 이런 사람은 비록 풍광 좋은 영릉(零陵)의 남쪽이나 소상강(瀟湘江) 사이에 두더라도 반드시 팔짱을 끼고 앉아 졸면서 제가 바라는 것을 꿈꿀 테니, 대체 어느 겨를에 한가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말한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이 절로 한가롭다고."
청나라 사람 주석수(朱錫綬)가 말했다. "고요에 익숙해지면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바쁨만 쫓다 보니 하루가 너무 짧다. 책을 읽으면 하루가 아깝게 여겨진다(習靜覺日長, 逐忙覺日短, 讀書覺日可惜)." "유몽속영(幽夢續影)"에 나온다. 거품처럼 허망한 바쁨을 쫓지 말고, 내면에 평온한 고요를 깃들이라는 말씀이다. 그 여백의 시간 위에 독서로 충실을 더하면, 자칫 심심해지기 쉬운 한가로움의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깝기만 하다.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조 한 수.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이라도 꿈이라건만, 여름날 하루해가 그리도 길더구나.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나니." 요컨대 마음이 문제란 말씀!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