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9년, 중종의 정국 운영이 난맥상을 빚자 대사간 원계채(元繼蔡) 등이 상소문을 올렸다. 요지는 이렇다. 나랏일이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상황인데도 임금이 끝내 깨닫지 못하면 큰 근심을 자초한다. 임금이 통치의 근본은 잊은 채 자질구레한 일이나 살피고, 번잡한 형식과 세세한 절목은 따지면서 큰 기강을 잡는 일에 산만하면, 법령이 해이해지고 질서가 비속해진다. 밝은 선비가 바른말로 진언해도 듣지 않다가 큰일이 닥쳐서야 비로소 후회한다. 이는 고금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이렇게 일반론으로 운을 뗀 후, 이어 임금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전하는 즉위 초에는 정성으로 덕을 닦고, 세운 뜻도 굳었다. 하지만 근년에는 일마다 고식적인 것을 따르고, 구차한 것이 많다. 본원(本源)이 한번 가려지면 백 가지 일이 다 그릇되고 만다. 전하께서 엄하게 다스리려 해도 요행으로 은혜를 얻은 자들이 인척의 힘을 빌려 못된 짓을 한다. 또 간언을 올리면 성내는 뜻을 드러내므로 진언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이틈을 타 인연을 맺은 무리들이 요행을 바라는 버릇을 더욱 제멋대로 행하니, 이래서야 나라 꼴이 되겠느냐고 했다.
토붕와해는 흙, 즉 지반이 무너져서 기와가 다 깨진다는 뜻이다. 서락(徐樂)은 한무제(漢武帝)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토붕(土崩)과 와해(瓦解)를 구분했다. 그는 천하의 근심이 토붕에 있지 와해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토붕은 백성이 곤궁한데도 임금이 구휼(救恤)하지 않고, 아래에서 원망하는데도 위에서 이를 모르며, 세상이 어지러운데도 정사가 바로서지 않아, 나라가 어느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와해는 권력자가 위엄과 재력을 갖추고도 제 힘을 믿고 제 욕심만 채우려다 제풀에 꺾여 자멸하고 마는 것이다. "사기" '주보언열전(主父偃列傳)'에 나온다.
지반이 무너지거나 구들장이 꺼지면, 지붕마저 내려앉아 기왓장이 산산조각 난다. 지반이 탄탄한데 지붕이 주저앉는 경우는 드물다. 근본과 기강이 서고 백성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면 와해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닥이 통째로 주저앉는 토붕의 경우는 손쓸 방법이 없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 문패나 바꿔 다는 미봉책(彌縫策)이나,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로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