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때 홍윤성(洪允成)이 포악한 짓을 많이 했다. '시정기(時政記)'를 보니 자기 죄목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격분해서 말했다. "고급 일본 종이에 찍은 '통감강목'도 안 읽는데, 우리 역사를 적은 '동국통감(東國通鑑)'을 누가 읽겠느냐. 너희 마음대로 써라." '월정만필(月亭漫筆)'에 실려 있다. 명종 때 이기(李芑)가 정승이 되어 선비를 죄로 얽어 많이 죽였다. 어떤 사람이 나무랐다. "사필(史筆)이 두렵지 않은가?" 이기가 대답했다. "까짓 '동국통감'을 누가 본단 말인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둘의 대답이 짜맞춘 듯 같다. 오늘날 '동국통감'은 아무도 안 읽지만 그들의 패려궂은 행실은 이 말과 함께 지금껏 전해진다.
"늘 강한 나라는 없다. 언제나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굳세면 나라가 강해지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약하면 나라가 약해진다." '한비자(韓非子)'유도(有度)편의 말이다. 굳셈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원칙에서 나온다. 원칙이 무너지면 굳셈도 없다. 법의 잣대가 고무줄이라 백성이 법 알기를 우습게 안다. 나라에 도대체 원칙이 없다. 무슨 이런 나라가 있는가? 이전 정부의 계획에 따라 기지를 만들려던 해군은 졸지에 해적 집단이 되었다. 애초에 시끄러우면 납작 엎드렸다가 괜찮겠다 싶으면 표정을 싹 바꾸는 정부의 경박한 태도가 빌미를 제공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시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역설하던 사람이 입장이 바뀌었다고 말을 뒤엎는다. 뭐라 하면 외려 성을 낸다. 속내가 들통 날까 염려해서다. 뒤에 또 어찌 말을 바꿀지 걱정이다.
계속해서 한비자는 말한다. "나라가 망하는 까닭은 그 신하와 관리가 모두 어지럽게 만드는 데 힘쓰고, 다스리는 데는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지럽고 약한데도 모두들 나라 법을 내던져버리고 바깥 일만 사사로이 한다면, 이는 섶을 진 채 불을 끄겠다는(負薪救火) 격이라 어지럽고 약함이 더할 나위 없다."
관리들은 제 월급과 지위만 안중에 있지 나라의 다급한 불은 관심 밖이다. 그 틈에 저마다 섶을 지고 나와 급한 불 끄겠다고 소란스럽다. 결국은 다 태우고 재만 남는다. '동국통감'을 안 읽는다고 역사까지 우습게 알면 안 된다. 원칙이 서야 나라의 기강이 선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