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儒者) 두 놈이 도굴을 한다. 대유(大儒)가 망을 보고 소유(小儒)는 묘혈을 판다. 먼동이 터오자 대유가 위에서 닦달한다. 소유가 낑낑대며 대답한다. "수의는 다 벗겼는데, 입속의 구슬을 아직 못 꺼냈어요." 대유가 말한다. "넌 '시경'도 못 읽었니? '살아 베풀지 않았거니, 죽어 어이 구슬을 머금으리오'라고 했잖아. 위를 꽉 잡고 턱 아래를 탁 쳐 버려! 구슬 안 깨지게 조심하고." 소유가 쇠망치로 시신의 턱을 쳐서 입속 구슬을 조심스레 꺼냈다. '장자' '외물'에 나오는 얘기다.
도둑질도 '시경'을 근거 삼아 한다. 이후 발총유(發塚儒), 즉 무덤 파는 유자는 도굴 같은 못된 짓을 하면서 그럴 법한 언사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위선적 지식인을 풍자하는 말로 쓴다. 다른 사람이 하면 치를 떨면서, 제가 하면 핑계와 변명으로 포장한다. 남이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자기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일로 된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나오는 북곽선생(北郭先生)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불륜의 현장에서 천연스레 '시경'의 구절을 읊조린다.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범 앞에서 경전의 말씀을 끌어와 갖은 아첨을 다 떤다. 급기야 듣다 못한 범이 냄새나서 못 먹겠다고 자리를 피한다는 얘기다.
윤기(1741~1826)도 '똥 푸는 사람 이야기(抒厠者說)'를 썼다. 똥 푸는 사람은 종일 냄새나는 일을 해서 농부에게 대가를 받는다. 그가 귀가하다가 아는 사람이 남의 묘혈 파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매장한 지 얼마 안 된 무덤을 밤중에 파헤쳐 시신에게서 값비싼 수의를 벗겨낸다. 소주에 담가 냄새를 뺀 후 세탁해서 비싼 값에 되판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하자, 도굴꾼이 째려보며 말했다. "야야! 너 할 일이나 잘해. 너처럼 매일 똥구덩이 사이에서 허둥거리는 것보다야 힘도 덜 들고 백번 낫지."
얼마 전 어느 화장장에서 시신을 불에 넣기 전에 수의를 벗겨 되팔다가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어쩌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가. 비싼 수의를 그저 불에 태우면 아깝지 않은가. 어차피 재가 될 텐데 뭐가 문젠가? 땅을 파는 것도 아닌데 죄 될 게 있나? 이런 심보였겠지. 돈 되는 일이라면 못할 짓이 없다. 걸리면 경전에서 핑계를 찾는다. 나쁜 짓을 하고도 절대 승복하지 않는다. 고약한 놈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