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용관(習容觀)

고사성어 2015. 2. 15.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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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용관(習容觀)

이덕무가 집안 조카 이광석(李光錫)에  대해 말한 글이  인상적이다. 그는 길을 갈 때 제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 아침에는 길 왼쪽으로 가고 저녁에는 오른편으로 갔다. 갈 때는 반드시 두 손을 모으고 척추를 곧추 세웠다. 자세가 한번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사소절(士小節)'에 나온다.

 

다산 정약용이  과거에 급제했다.  채제공(蔡濟恭)이 축하차  그의 집에 들렀다. 반나절 머물며 여러 손님과 묻고 대답하는데, 앉은 방향이 처음에서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한번은 나랏일로 조정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금 지나자 좌우에서 몸을 비틀거나 등을 기대며 우두둑우두둑 뼈 소리를 냈다. 채제공만 두 무릎을 땅에 딱 붙이고 무쇠로 빚은 산악같이 앉아 있었다. 이 두 번의 관찰로 다산은 한 시대의 중심에 섰던 거인의 풍모를 웅변했다.

 

평상의 몸가짐에서  그 사람의 무게와 교양이 드러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온전할 리 없다. 제 버릇 남 못 주니, 놀던 대로 놀고 하던 대로 하다가 망신을 당한다. 평소의 수양과 노력 없이는 입장과 처지가 바뀌어도 적응이 어렵다.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시험 볼 때 일이다.  조정 예절이 익지 않아 임금 앞에서 허둥지둥 잘못이 많았다. 보다 못한 임금이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조정은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곳이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꿇어앉고 절할 때 모두 법도가 있는 법. 너희가 어찌 '습용관(習容觀)'이란 세 글자를 모르느냐. 처음 관직에 나올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심상(尋常)한 예절조차 이처럼 무질서하니 앞으로 어찌 관직에 임하겠는가? 살피고 조심하여 다시는 몸가짐을 잃지 않도록 하라."

 

'습용관'은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나온다. 조복(朝服)을 입고는 용모와 의관을 익혀 연습한 뒤에 공소(公所)에 나아간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은 묻고 낯선 것은 익혀야 직임을 다할 수 있다. 몸가짐이 장중해야지 경망해선 못쓴다. 의욕만 앞서 나부대고 설치기만 하면 실속도 없이 비웃음만 산다. 태산교악(泰山喬嶽) 같은 무게는 습용관에서 비롯된다. 정조는 1786년 4월 초계문신에게 시험을 뵈면서 아예 '습용관'을 시험 제목으로 내걸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뜻이었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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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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