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과일 나무를 너무 촘촘하게 심었다. 곁에서 말했다. "그렇게 빼곡하게 심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소." 그가 대답했다. "처음에 빼곡하게 심어야 가지가 많지 않습니다. 가지가 적어야 나무가 잘 크지요. 점점 자라기를 기다려 발육이 나쁜 것을 솎아내서 간격을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하면 나무도 오래 살고 열매가 많습니다. 게다가 목재로 쓰는 이로움도 있지요. 어려서 가지가 많은 나무는 자라봤자 높게 크지 못합니다. 그제서 곁가지를 잘라내면 병충해가 생겨 나무가 말라 죽고 맙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얘기다. 피지상심(披枝傷心)은 가지를 꺾으면 나무의 속이 상한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간격을 두어 널널하게 심으면 곁가지만 많아진다. 안 되겠다 싶어 곁가지를 쳐내니 그 상처를 통해 병충해가 파고 들어 결국 나무의 중심 줄기마저 손상된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 답답하리만치 빼곡하게 심어 운신의 폭을 제한했다. 그러자 어린 묘목은 딴 짓을 못하고 위로만 곧게 자랐다. 제법 자라 수형(樹形)이 잡힌 뒤에 경쟁에서 뒤처진 묘목을 솎아내 간격을 벌려준다. 이미 중심이 굳건하게 섰고, 이제 팔다리를 마음껏 뻗을 수 있게 되자 아주 건강한 과수로 자라고, 곧은 중심 줄기는 옹이도 없어 튼실한 목재로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성호 자신이 직접 실험해 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가지를 자른 곳에 물이 닿으면 썩고, 썩은 곳에 벌레가 생겨 끝내는 나무 속까지 썩고 말았다.
곁가지가 많으면 큰 나무가 못 된다. 열매도 적다. 중심이 곧추 서야 나무가 잘 크고 열매가 많다. 곁가지를 잘라내면 속이 썩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 중심을 세우기 전에 오지랖만 넓히면 이룬 것 없이 까불다가 제풀에 꺾인다. 작은 성취에 기고만장해서 안하무인이 된다. 자리를 못 가리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결실을 맺기 전에 뽑혀 버려진다. 곁눈질 않고 중심의 힘을 키워야 큰 시련에 흔들림 없는 거목이 된다. 이리저리 두리번대기보다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디뎌, 많은 열매를 맺고 동량재(棟樑材)가 될 노거수(老巨樹)로 발전한다. 잘생긴 나무는 중심이 제대로 선 나무다. 정신 사납게 이리저리 잔 가지를 뻗치면 중심의 힘이 약해져, 농부의 손에 뽑혀 땔감이 되고 만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