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茶道)는 차와 물과 불이 최적의 조합으로 만나 이뤄내는 지선(至善)의 경지를 추구한다. 초의(艸衣) 스님은 차 안의 신령한 기운을 다신(茶神)이라 하고, 다신을 불러내려면 차와 물과 불이 중정(中正)의 상태로 만나야 함을 강조했다.
먼저 좋은 찻잎을 제때 따서 법대로 덖는다. 찻잎을 딸 때는 계절을 따지고 시간과 날씨도 가린다. 덖을 때는 문화(文火)와 무화(武火), 즉 불기운의 조절이 중요하다. 물은 그 다음이다. 좋은 물이라야 차가 제 맛을 낸다. 다만 알맞게 끓여야 한다. 물이 덜 끓으면 떫고, 너무 끓으면 쇤다. 이제 차와 물이 만난다. 차를 넣어 우린다. 적당량의 차를 적절한 시점에 넣고, 제때에 따라낸다. 이러한 여러 과정 중의 하나만 잘못되어도 다신(茶神)은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찻잎을 따서 덖고, 찻물을 길어 끓이며, 찻잎을 넣어 우리는 모든 과정에 중정(中正)의 원리가 적용된다. 더도 덜도 아닌 꼭 알맞은 상태가 중정(中正)이다. 다도는 결국 이 각각의 단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얻는 데 달렸다.
인간의 삶에 비춰 봐도 중정의 원리는 중요하다. 차가 정신이면 물은 육체다.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유지하고, 문무를 겸비하며, 때의 선후를 잘 판단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세상이 나를 알아줘도 내가 그에 걸맞은 자질을 못 갖추었다면 물은 좋은데 차가 나쁜 것이다. 내 준비가 덜 됐는데 세상이 나를 부르거나, 내가 준비되었을 때 세상이 나를 돌아보지 않음은 문무(文武)가 조화를 잃은 것에 해당한다. 차와 물과 불이 조화를 얻어도, 너무 서두르거나 미적거려 중정을 잃으면 차 맛을 버린다. 과욕을 부려 일을 그르치거나, 상황을 너무 낙관하다가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경우다.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에서 노래한다. "체와 신이 온전해도 중정 잃음 염려되니, 중정이란 건(健)과 영(靈)이 나란함에 불과하네." 차 좋고 물 좋아도 중정을 잃으면 차가 제 맛을 잃고 만다. 중정은 차건수령(茶健水靈), 즉 물이 활기를 잃지 않아 건강하고, 차가 신령스런 작용을 나타내는 최적의 상태를 뜻한다. 다신은 그제야 정체를 드러낸다. 사람 사는 일도 다를 게 하나 없다. 삶이 중정의 최적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찌 잠시인들 경거망동할 수 있겠는가?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