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銀山)은 중국 베이징시 창핑구(昌平區)에 위치한 산 이름이다. 봉우리가 워낙 높고 험준한 데다 겨울이면 흰 눈에 늘 덮여 있어 이 이름을 얻었다. 기슭은 온통 검은 석벽으로 둘러싸여 이를 철벽이라 부른다. 그래서 은산철벽은 사람의 의지가 굳고 기상이 높아 범접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말로 많이 쓴다.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정황(丁)의 신도비명에서 "대개 공은 실지 공부가 이미 깊어 대의를 환히 보았다. 이 때문에 변고를 만나서도 지조를 잃지 않았다. 비록 옛날에 이른바 은산철벽이라 한들 어찌 이에서 더하겠는가?"라고 썼다. 명(銘)에서도 "절해에 유배되어 죽음 앞에 더욱 굳세. 곤륜산에 불이 나도 안 타는 건 옥뿐일세(流移絶海, 九死確. 火炎崑岡, 不燼唯玉)"라고 기렸다.
월봉 무주(月峯 無住·1623~?) 스님의 '시혜사(示慧師)'란 시는 이렇다. "푸른 바다 깊이 재기 무에 어렵고, 수미산 높다 한들 못 오르리오. 조주 스님 '무(無)' 자 화두 이것만큼은, 철벽에다 더하여 은산이로다(滄海何難測, 須彌豈不攀. 趙州無字話, 鐵壁又銀山)." 깊은 바다도 닷줄로 잴 수 있고 수미산도 작정하면 못 오를 리 없다. 하지만 조주 스님의 무(無) 자 화두만큼은 눈앞이 캄캄해 어찌해볼 수가 없다. 시는 자신이 날마다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지만 이 화두 하나를 들고 중노릇의 끝장을 보려 한다는 얘기다.
은으로 깎은 산, 무쇠 절벽은 기대고 비빌 언덕조차 없는 난공불락이다. 선가(禪家)에서는 화두를 들 때 마치 은산철벽 앞에 마주 선 것처럼 어찌해볼 수 없는 극단의 경계까지 자신을 밀어붙여 활구(活句)로 이를 타파해야 화두가 비로소 열린다고 본다. 은산철벽을 유가에서는 지향해야 할 대상으로 본 데 반해 선가에서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으로 본 것이 다르다.
기필코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은산철벽은 누구에게나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 불퇴전(不退轉)의 정신만이 끝내 우리를 붙들어준다. 스스로 은산철벽으로 우뚝 설 때까지 물러서면 안 된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