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한 대목.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은 듯이 했다. 지혜로운 것은 미칠 수 있지만, 어리석은 듯함은 미칠 수가 없다." 알아주는 임금 앞에서 마음껏 역량을 펼치다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어리석은 체 숨어 자신을 지킨다. 후세는 영무자를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지혜자로 높였다. 하지만 좀 얄밉다. 누릴 것만 누리고, 손해는 안 보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공자께서는 어째서 이를 대단하다 하신 걸까?
'춘추'에 보이는 전후 사정은 이렇다. 처음에 영무자는 위성공(衛成公)을 따라 여러 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충성을 다했다. 덕분에 사지에서 돌아온 성공은 영무자 아닌 공달(孔達)에게 정치를 맡겼다. 영무자의 서운함과 배신감이야 말할 수 없었겠는데, 그는 원망하는 대신 바보처럼 자신을 감추고 숨어 끝내 공달과 권력을 다투지 않았다. 공자는 처지를 떠난 영무자의 한결같은 충성을 높이 산 것이다. 나라는 어찌 되건 제 한 몸만 보전하려는 꾀를 칭찬한 말씀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를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식의 처세훈으로 오독했다.
명철보신이란 말은 '시경' '대아 증민(蒸民)'편에 나온다. "현명하고 또 밝아서 그 몸을 붙들어, 온 종일 쉬지 않고 한 임금만 섬기누나.(旣明且哲, 以保其身. 夙夜匪解, 以事一人)"란 시다. 주나라 선왕(宣王) 때의 재상 중산보(仲山甫)의 덕망을 칭송한 내용이다. 이것도 흔히 좋은 세상에서 누리며 잘 살다가 재앙의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물러나 제 몸과 제 집안을 잘 보전하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쓴다. 실제의 쓰임과는 정반대의 풀이다.
명철(明哲)은 원래 선악과 시비를 잘 분별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익과 손해를 잘 판별하고, 나설 때와 침묵할 때를 잘 아는 것으로 풀이한다. 어리고 약한 것을 붙들어 잡아주는 것이 보(保)다. 사람들은 제 몸을 지켜 재앙을 면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다산은 세상에서 명철보신이란 말을 제 몸과 제 집안을 보전하는 비결로 여기면서부터 저마다 일신의 안위만 추구할 뿐 나랏일은 뒷전이 되어, 임금이 장차 국가를 다스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고 통탄했다. 경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오독의 폐해가 참으로 크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