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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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사랑은
상거래 방식에 있지 않고
공으로
자기의 모든 것과
자기 생명까지라도 바치는
섬김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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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
못마땅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무상성(無償性)의 사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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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만이 그런 무상성의
사랑에 보답을 하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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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는,
교회는 친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부유하고 학식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특별히 대접받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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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가난한 이들이 초대받고,
아픔과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는
삶의 자리여야 한다는 뜻이랍니다.
.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는 데
우리가 얼마나 주저하고 굼뜨며,
오히려 변명거리를 찾기에 급급한지 잘 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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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리에게,
이 말씀에 따른 삶의 증언은
우리를 깨어나게 하면서
작은 일부터 실천할 용기를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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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돼요. 바꿔서 말씀드린다면, ‘없는 사람들은 우리 교회의 구원’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번 느꼈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원이 참인간이 되는 것이라면, 또 가난한 사람들이 제일 인간다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로부터 구원받아야지요. 우리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큰 거리를 두지 않고 함께 산다면 구원받을 겁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습니다.”<예수회 정일우 신부『가난살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