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17.141024 지금 여기서 사랑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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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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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을 위한
‘삶의 지혜’를 열심히 추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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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은
인생살이에서 참으로 중요하지만
흔히 빠질 수 있는
‘인식의 함정’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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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깃한 ‘처방’만 찾다가
정작 ‘지혜’의 가장 깊은 측면을 놓친 채
겉으로 드러나는 고정 관념에
더 심하게 매일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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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이탈리아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고대 ‘삶의 지혜’의 가장 뛰어난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풀이하면서,
사람들이 자주 간과하는 진정한 ‘삶의 지혜’를 위한
두 가지 요소를 말하고 있답니다.
. 첫째, 그저 이론적인 지식이거나
자신의 ‘인격’과 무관한 차원의 능숙함이 아니랍니다.
곧, 우리가 의지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통해 실현하는
‘실천적인 앎’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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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하고 체험하는
도덕과 행복은 본디 불완전하며,
오직 하느님과의 최종적 만남에서만
‘완전한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간적 지혜’와 ‘인간의 행복’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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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을
그의 이러한 통찰과 함께
묵상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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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징조를 잘 알면서도
‘시대’를 풀이할 줄 모르는 자들을 ‘위선자’하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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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이 표현으로
지식은 있으되 삶의 지혜에는
무지한 자들을 딱하게 여기시는 한편,
교묘하게 자신의 윤리적 책임을 외면하려는
그들 마음속의 유혹을 날카롭게 벗겨 내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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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면서
‘삶의 지혜’를 가진 이는 오히려 화해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깨우쳐 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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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화해의 힘의 근원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에 있음을
언제나 말씀하고 계심을 잘 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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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도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힘입어
일치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답니다.( 에페4,1-6)
.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혜’는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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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화해와 일치와 사랑을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이,
주님의 은총이 인간적 불완전함을 채워 나간다는 것을
믿고 바라는 마음을 가진 이야말로
참으로 행복을 위한 지혜를 깨친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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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일치와 사랑을
지금 여기서 실천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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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