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15.141022 주님과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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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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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비유들은 제자들에게 필요한
내적 자세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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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성서학자는 제자의 이러한 덕목을
‘주의력’과 ‘책임성’으로 요약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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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을 지닌 제자의 모습은
‘혼인 잔치’로 상징되는 하늘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알아보는 이이며,
비록 ‘때’는 모른다 하더라도
‘곧’ 사람의 아들이 돌아와 하늘나라를 완성하시리라는
확신으로 늘 깨어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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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책임성'은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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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권력이나 사목적 권한을
주님께서 그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했는지에 따라
주님께 ‘행복한 종’ 또는 ‘불충실한 종’으로 인정받는다고
복음의 비유는 말하고 있답니다.
. 그런데 ‘주의력’과 ‘책임성’을 갖는 데 실패하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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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현실적으로
‘주인의 부재’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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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은 그 ‘부재’가 항구적일지
일시적일지 ‘외적’으로는 가늠할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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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그들 가슴속에서
믿음과 불안과 의심이 뒤엉키게 되고,
어떠한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그 기준이 흔들리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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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유다인들이 즐겨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선악과 진위의 분별이 어려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놓여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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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어찌 보면 주님께서 ‘부재’하시며,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고
모호한 시간 속에 놓여 있어 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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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주의력과 책임성을 가진 제자다운 판단보다는
눈앞의 이익과 허무한 욕망에 따라 사는
유혹에 빠지기 쉽답니다.
. 그러나
복음에 나오는 행복하고 충실한 종은
‘주인의 부재’가 사실은 부재가 아니요,
그분께서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함께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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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한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기억하면서
의심과 태만의 유혹을 이겨내고
믿음과 희망 속에서 주인과 ‘이미’ 함께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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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주님의 실재(實在)상황 속에서
우리의 생활로 이어져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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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