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52.140821 하늘나라를 갈망하자
.
.
.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
.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인 비유의 대상을 가리키시는 대신에
긴 이야기의 구성과 인물 전체를
비유로 삼아 하늘나라를 보여 주십니다.
.
이런 말씀을 대할 때에는 손쉽게
교훈이나 가르침을 이끌어 내려 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과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야 한답니다.
.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체험’하고
단번에 눈에 띄지 않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도록 노력할 때,
머리로 파악한 비유의 주제들이
더욱 생생하게 가슴속으로 다가온답니다.
. 어제 복음의 주제가
하늘나라의 ‘무상성’이라면,
오늘 복음의 주제는
하늘나라에 초대된 사람의 ‘책임성’이랍니다.
.
.
.
혼인 잔치의 예복은
그 책임성을 잘 상징한답니다.
.
하늘나라는 주님의 자비로
우리에게 거저 선사되는 것이나,
우리가 준비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답니다.
.
그것이 무엇인지
마음속에서 절실하고 명확하게 떠오를 때
비로소 이 하늘나라의 비유를 묵상한 것이랍니다.
.
.
. 우리 가슴속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망,
그저 자신의 처지에 주저앉아
눈앞의 일에만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진실한 세계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리의 존엄을 지켜 준답니다.
.
이렇게
참되고 고귀한 갈망이야말로
혼인 잔치의 예복이 아닐까?
.
.
.
우리의 가장 중요한 ‘책임성’은
주님께서 심어 주신 하늘나라에 대한
이 갈망을 유혹과 곤경 속에서도
꿋꿋이 지키는 데 있음을 절절히 느낀답니다.
.
.
.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늘나라를 갈망해야 한답니다.
.
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