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寐(불침)잠 못 이루고
不寐郵村夜(불매우촌야) 잠 못 이루는 역마을의 밤
秋燈影自搖(추등영자요) 가을 등잔, 불꽃이 절로 까분다.
綻衾頻集蠍(탄금빈집헐) 터진 이불 틈으로 설레발이 뻔질나게 모여들고
頹壁巧容猫(퇴벽교용묘) 무너진 벽 사이로 고양이 용케도 들어왔다.
冉冉天慳曙(염염천간서) 꾸물꾸물 먼동 틀 낌새도 없고
颼颼雨達朝(수수우달조) 추적추적 아침까지 비가 이어진다.
此中難更住(차중난갱주) 여기서 더 머물기는 어렵고말고.
何況海山超(하황해산초) 하물며 산이랑 바다가 부르질 않나?
저명한 문인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1786~1841)가 젊은 시절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 어느 역이 있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객지로 떠돈 지 꽤 되었건만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인다. 다들 잠들어 사위(四圍)가 고요한데 켜놓은 등잔불만 혼자서 춤을 춘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이불을 덮고 누웠더니 설레발이 몇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들고, 무너진 벽 작은 틈새로 고양이 한 놈이 용케도 들어와 노려본다. 이제 잠자기는 글렀다. 어서 빨리 날이 새면 좋으련만 먼동이 틀 낌새는커녕 아침까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하얗게 밤을 새우고 일어났다. 여기서는 추호도 더 머물 생각이 없다. 툴툴 털고 떠나자. 저 앞에 바다와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르는 것만 같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그림:유재일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