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
이제 조금 알겠네, 낮게만 내리는 비
거슬러 가는 것은 자궁을 만지는 일
입가에 늦은 저녁이 둥글게 말려 있네
타닥-타닥 남아 있는 아궁이 속 붉은 소리
책처럼 엎드려서 응고된 귀를 열고
얼룩은 길처럼 굳어 꾸들꾸들 잠기네 /이화우
유월부터 여름이라던 계절 구분은 옛말이 됐다. 오월 중순이면 더위 시작이다. 한여름 같은 이른 더위에 지치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그늘에 들면 바람이 아직 시원하니 그 촉감이 고마울 따름. 마음을 추스르며 뜨거운 태양과 길게 마주설 여름 들판을 생각한다. 뜨거워야 보리도 잘 익고 금방 낸 어린모들도 더 파르랗게 자랄 테니 말이다. 땀 실린 짜증을 저녁 무논처럼 조용히 가다듬는다.
그런데 여름이라도 이런 방에 들면 퍽 으늑하겠다. '타닥-타닥 남아 있는 아궁이 속 붉은 소리'에 가슴 밑바닥까지 뜨뜻해져서 뭔지 궁싯궁싯 더 그리워지겠다. 나직한 빗소리에 귀를 맡긴 채 배를 깔고 있으면 다문다문 듣는 낙수가 연신 동그라미를 그리고 가리라. 그 결에 뭔가 스치는 듯싶으면 그대인가 귀를 또 둥글게 모으겠다. 얼룩도 '꾸들꾸들 잠기'는 '그 방'이 있는 어딘가로 문득 거슬러 가고 싶다. /정수자 :시조시인 /그림: 송윤혜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