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23.140411 구원의 십자가를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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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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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아가 보는 것."
입니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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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왜 그리도 십자가의 그림자조차도
보기 싫었던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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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수난과 예수님의 고통,
그리고 사람들의 폭력과 적개심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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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그분을 배신하는 저의 약한 모습과
그것을 알기에 슬퍼지는 마음 때문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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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십자가의 그림자를 보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의 갖가지 아픔 때문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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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님, 바다가 너무도 푸릅니다."
<엔도 슈사쿠 '침묵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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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 『깊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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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의 나약함과 인간의 나약함,
저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
저의 악함과 인간의 악함,
이 가련하고 비참한 모든 현실을 담고 있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성주간을 기다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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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드리워진 그림자 밑으로
도망치지 않고
그 앞에서 십자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리라 다짐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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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십자가가
구원의 길임을 믿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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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가
구원의 길임을 믿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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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