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18.140406 귀담아 눈뜨고 어둠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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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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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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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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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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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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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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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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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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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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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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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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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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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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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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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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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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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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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와서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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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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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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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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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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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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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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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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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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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시리라는 예언은
죄의 행실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우리에 대한 해방의 소식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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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복음은
여러 대목에서 우리 각자의
인생살이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신앙인의 관점에서 깊이 묵상하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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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묵상할 때 가끔 떠오르는 것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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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니코프와 창녀 소냐의 만남에서
복음 말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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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잘못된 철학과 자격지심,
오만함이 결부된 악의 포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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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고도
그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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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불안과
자신 안에서 조금씩 싹트는 죄의식을
부정하는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의심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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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지탱해 온 그의 세계관은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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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젊은 여인 소냐에게
감동하였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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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비록 생활고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가련한 신세이지만
순수한 믿음과 영혼을 지닌 여인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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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를 찾아간 주인공이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변화가 잘 드러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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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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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소냐의 서랍장 위에 있는 낡은
『신약 성경』한 권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갑자기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청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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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주저하던 소냐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요한 복음서의 대목을 천천히 읽어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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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여러 면에 걸쳐
이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말씀을 읽는 순결한 '매춘부'와
말씀을 듣는 비참한 '살인자'에게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놀랍게 표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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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처럼
무겁디무거운 인생의 짐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무덤에 갇힌 것 같은 신세이든,
라스콜니코프처럼
자신의 아집과 악행으로
스스로를 영적으로 죽이고
무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신세이든,
그것의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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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시는 예수님의 이 외침은
바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 대한 말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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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갇힌 우리에게
외치는 주님의 말씀에
귀담고 눈을 떠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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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