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16,140404 ‘그분의 때’에 나의 시간을 맞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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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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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긷고 길어도 결코 마르지 않는 샘처럼
한없이 깊은
신비라는 사실을 더욱 느끼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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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과 부활의 깊은 신비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는 데
우리가 먼저 만나는 것은
어쩌면 죄와 악의 신비일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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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비가 지닌 무게에
놀라고 절망해 보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수난에 담긴
'대속'의 신비를 체험할 수 없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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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세례자 요한의 깨달음(요한 1,29 참조)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비로소 실감하는 것,
바로 이 체험이 우리가 예수님의 지상 삶의
마지막 순간을 묵상하면서 이르러야 할 지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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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신비는 결코 풀 수 없는
난제라고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말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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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이성적으로 해명하거나
모조리 없앨 수 없다는 면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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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악의 신비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의 뜻을 깨닫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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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악의 신비인 '세상의 죄'를 '하느님의 어린양'께서
짊어지시고 없애신다는 것을 바라보도록 초대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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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속'의 신비는
결정적인 '때'와 함께 드러난다는 것을,
복음의 가르침처럼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서 알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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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때' 곧 예수님의 시간은 수동성과
능동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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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악의 신비에
당신을 희생 제물인 어린양으로 내맡기시지만,
그것은 동시에 악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사건이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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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신비와 맞서며
대속의 신비를 체험하고자 하는
우리 신앙인에게
'예수님의 때'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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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분의 때'가 인간의 시간,
바로 나의 시간과 어떻게 만나는지
깨닫는 은총을 청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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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때’가
나의 시간과 만나도록
은총을 청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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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