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13.140401 간절히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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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지고 싶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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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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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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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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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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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한 사람이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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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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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나오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들은 치유와
생명의 물을 애원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감지하는
분위기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전하는
생명력이나 감동과는 사뭇 다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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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출렁이면
치유의 힘을 갖는다고 믿고
그 순간을 노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하고 살벌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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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물속에 먼저 들어가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며 다른 이들을
밀쳐 내기를 서슴지 않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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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신만을 돌보는 곳에는
진정한 생명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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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는 치유는
현실이 아니라 소문일 따름이며,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한 구원의 물은
사실은 조갈을 느끼게 하는 신기루일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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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벳자타 연못의 광경은
수많은 행복의 소문 사이를 헤매는 가운데
자신의 생존에만 힘쓰며
이웃을 밀쳐 내는 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은 점을 보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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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못가에는
속절없이 다른 병자들에게 밀려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서른여덟 해를 앓으며
치유의 요행을 기다리는 병자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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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제 치유되어
일어나 걷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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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상이 아니라
정말로 구원을 체험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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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험하다는
출렁이는 물의 힘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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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다가오신
예수님께 간청하였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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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남보다 빠르거나 강하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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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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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이신
주님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이에게
구원과 치유의 꽃이 피어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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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업적이나 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선물이며 만남이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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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절실히 청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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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