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일찍 오려는가. 혹한 예고로 더 움츠렸던 겨울이 극심한 추위 없이 꼬리를 내리더니 봄빛이 도처에 스멀거린다. 강원도 폭설은 자연의 위력을 다시 보여줬지만, 봄 기척은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다. 봄이 온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터뜨리듯 터져 나오는 사랑도 감출 수가 없다. 아무리 굳게 먹어도 마음대로 '정리'할 수도 없다.
여북하면 '발밑 세상을 버린 고승들 수행처에서'까지 사랑 고백을 써놓겠는가. 그것도 정리하려다 '그냥 좋아할래요'라고! 그 사랑을 엿본 중년 여자는 다만 '꼬깃한 나의 고백'이나 불전함에 얹을 뿐. 하지만 그 또한 사랑이니 봄은 얼마나 많은 고백을 먹고 피는 걸까. 꽃들도 그런 고백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굴리다, 간만에 시를 써야겠다고 깊숙이 앉아본다. /정수자 :시조시인 /그리: 이철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