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온 종의 깽깽거리는 것, 여기 오라는 그 '신호' 말고 우리나라 옛 종소리, 들리는 그 자리에서 그만 깊이깊이 가라앉아 보라는 그 소리 들으면 이미 없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랑 같이 나란히 서 있고 신라도 백제도 울긋불긋 지나간다. 덩― 하고 한번 울리면 그 소리 가다가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다가 다시 간다. 그렇게 밀물 썰물처럼 하며 만물에 스미니 봄 산은 그 소리로 푸르러지고 가을 산은 그 소리로 붉게 물든다. 선운사 동백은 그 소리를 양식 삼아 그토록 붉은 꽃을 내밀고 수덕사 앞 산맥(山脈)들은 그 소리를 먹고서 그토록 흥겹게 덩실거리는 거다.
인간은 무슨 결론으로 종을 만들었을까? 그 결론이야말로 가장 위대하지 않은가! 그 소리 안에 못 담을 것이 없어서 '괄호'요, 그 배부름 한없이 투명하여 백자 항아리 아닌가. 그 종소리 귀담아들을 생각 없다면 무슨 인생을 살았다고 하겠나. 하루 반은 혀끝소리 말고 종소리로 말하고 종소리의 말로 살고 싶다.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