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을 바라보고 앉은 집에 빛이 내리고 있다. 으스스하고 쓸쓸한 겨울의 낮이지만 볕은 하얗게 떨어지고 있다. 바람이 없이 빛은 내려 쌓여 남향집의 전부는 한결 아늑하다. 물코를 흘리고 있을 법한 아이들도 쇠약한 노인도 지게도 누렁이도 장화도 파르스름한 마늘밭도. 빛은 내려 폐광과도 같이 껌껌한 속마음과 사물의 안쪽을 비춘다.
하나의 풍경이 화자의 사사롭지 않고,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읽으니 한적하고 평화롭다. 무르고 약한 것을 가볍게 쓰다듬어 만지는 것이 시심(詩心)이라면 그것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꽃밭에 있는 높고 낮은 화초들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빗줄기가 골고루 뿌리듯이 볕은 내려 남향집의 모든 존재를 동시에 밝게 비춘다.
/문태준:시인/ 그림:김성규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