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들은

시 두레 2014. 2. 9.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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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집들은


저물녘의 기운 황금빛 속에 집의 무리는 조용히 달아오른다,

진기하고 짙은 빛깔로 그 휴식은 기도처럼 한창이다.


한 집이 다른 집에 가까이 기대어,

집들은 경사지에서 의형제를 맺고 자란다,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노래처럼 소박한 그리움으로.


벽, 석회칠, 비스듬한 지붕, 가난과 긍지, 쇠퇴와 행복,

집들은 부드럽고 깊게 그 날에 그 날의 열기를 반사한다.

    /헤르만 헤세(1877~1962)


    카페 창가에 차 한 잔을 놓고 앉아 거리를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저마다 그 걸음걸이가 다르다. 하나 부자(父子)의 빼닮은 그것은 신기하기만 하다. 저것을 피내림이라고 하겠지? 귀갓길에 바라보는 성북동 성벽(城壁) 아래 언덕배기 집들은 모두 키가 다르고 표정이 다르다. '경사지에서 의형제를 맺고 자란' 집들은 오랫동안 따뜻이, 키를 다투지 않고 넓이를 다투지 않고 둥글게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각기 다른 자기 가계(家系)의 사연을 불빛과 두런거림으로 흘려보내 왔다. 그 이야기를 모으면 그대로 소설이고 역사고 전설일 것이다. '가난과 긍지' '쇠퇴와 행복'이 각자의 타고난 걸음걸이대로 '열기를 반사'하는 시(詩) 같은 집들이 지금 위태롭다. 재개발이라는 돈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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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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