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38.140116 주님께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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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1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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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의 아들들과 이스라엘군은
계약 궤의 힘으로 적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그 궤를 진영으로 옮겨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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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이는 주님에 대한 신뢰인 것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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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기대와 달리 파국으로 이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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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은 섬멸당하고
계약 궤는 적들에게 빼앗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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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엘리의
두 아들도 죽고 그 집안은 몰락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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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이보다 앞서 서술되는
‘엘리의 집안은 망한다.’는
내용의 주님의 말씀(2,27-36)과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2,22-26)에 관한 내용과
연관해서 볼 필요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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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엘리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인들이
계약 궤에 대해 보인 태도는 참된 신앙이 아니라
가장 거룩한 것을
‘수단’으로 여긴 사실을 성찰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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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삶의 방식을 주님의 말씀과
계명에 따라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을 그 자체로 경외하는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참된 경건함도 없이,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목적과 계획을 성취하는
영험한 도구로 여기는 태도를 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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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고방식은 어쩌면
주님을 모르고 있는 ‘이방인’보다도
신앙의 참모습과
더욱 동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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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경우에 이러한 교묘한
불신앙의 유혹에 직면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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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전체의 삶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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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삶만을 내어놓으며
그것을
믿음이라고 자족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진짜 관심이 머무는
나머지 절반의 삶을 위한 수단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격하시킬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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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절반의 인생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바란다면,
삶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던지는
신앙생활의 용기와 진실함이 필요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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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맡여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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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