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31,140109 충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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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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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출사표’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을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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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에서
제갈량의 고사를 연상하는 게
송구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삼국지』라는 위대한 문학 작품의
명대목이 절로 생각날 만큼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공생활의 시작을 밝히시며 보여 주신
확고한 모습은 멋지고 시원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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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봉독하신 뒤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는 대목을 거듭 묵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언자의 전통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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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한국 교회가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을 자주 잊고 있으며,
어쩌면 조금은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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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신앙의 자기 쇄신을 가능하게 한
비판 의식이 살아남을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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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우리 시대에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도구로서 존재하려면
끊임없이 예언자적 전통에서
시대와 세상과 교회 제도의 현실을 성찰하고
쇄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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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은
세상과의 힘겨운 대립만이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의
몰이해라는 어려움까지도 자주 겪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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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진실을 보여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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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길은
교회가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가야 할 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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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구성원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에 충실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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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