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24.140103 진리를 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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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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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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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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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1서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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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것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를 밝히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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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필연적인 관계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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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심리학자 프롬의 유명한 구분을 빌리자면,
자신에게 그저 붙어 있는 것인 ‘소유’에 매여 있는 대신에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깨닫는 체험이라 할 수 있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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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것은,
이러한 본연의 존재 경험은
오만과 허영과 자존심을 버리고
겸허한 자세로 내면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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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원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조금의 꾸밈도 없이 표현하고 감사하는 모범을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발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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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세례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은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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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이라는
신원을 철저하게 깨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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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직 자기 뒤에 오실 분을 위해
사람들의 정신을 깨우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기를 바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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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러한 겸손은
그저 몸에 밴
습관적인 공손이 아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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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요즘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자존감’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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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열렬히 추구하는 갈망이
그리스도를 만나
온전히 결실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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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진리를
체험한 사람의 겸허한 자세는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는
증거가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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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추구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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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