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20.140101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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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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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로데가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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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주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미리 이집트로 피난을 가라고 일러 주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죽음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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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의문 하나를 가질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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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왜 죄 없는 아기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시고 그냥 두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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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물음에 앞서
또 다른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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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아기들이 죽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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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때문에
아기들이 죽었다는 것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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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바로 헤로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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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욕심 때문에,
그 욕심이 낳은 두려움 때문에,
그 두려움이 낳은 폭력 때문에 죽은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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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니
인간의 모든 고통은
하느님께서 책임지셔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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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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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욕심이,
그 욕심이 낳게 되는 두려움이,
그 두려움이 낳게 되는 폭력이
많은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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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아기들에 대한 책임이 없으심에도
모든 고통에 책임을 지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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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아기들이 죄 없이 죽어 갔던 것처럼,
아무런 죄도 없는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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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하느님께서는
아기들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고,
그들을 위하여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허락하시어
그 아기들과 부모들을 구원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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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서는
나시고, 고난 받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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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