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탓할 수 없는 나대로, 내 갈 길을 왔을 뿐이다.
하얗게 익은 속살은 모조리 베어내고 껍데기만 거두네.
내가 없었더라면 살림은 무엇으로 꾸리며 어찌했을까?
새끼줄 타고 초가지붕 오를 때 하얗게 알리고 싶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지붕 위에서 하늘 한을 풀었지.
왕다운 대접도 받아, 모두 둥근 넓적 왕좌에 앉았었지.
아는 듯 모르는 듯, 세상의 온전한 것 나밖에 없었지.
오롯이 방안에 들여 정중히, 장례를 치르며 해탈했지.
그래, 물 뜨고 쌀 일어 공양으로 이승 저승 날라냈다.
이렇듯 흔적 없이 지내면서 그 많은 이름을 남겼지만,
쪽박 차고 어쩌니, 새는 바가지 안팎서 어쩌니 하여도,
쌀바가지, 두레박, 물장구 박, 남박 보다는 명예로웠다.
한 많은 이승 삶 되돌릴 수 없으니, 줄기만 늘려간다.
호박에 내 이름을 얹혀 봄여름 가을 겨울, 참아내면서,
하얀 꽃술만 노랗게 변한, 긴 세월 이겨낸 한 푸노라.
허기진 집은 별맛으로 박나물이라며 기꺼이 먹더니만,
그 얼굴 가리개 탈바가지 되어 허름한 헛간에 걸려도,
뚫린 눈구멍으로 이승의 마지막 모양, 오롯이 보인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