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문

외통넋두리 2008. 4. 1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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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1.001110 열녀문

현대 사회가 어떠한 명분으로 개인이나 단체에 표창, 메달, 훈장, 감사장, 등으로 포상하는 것이 휴대하기 편리하다고 하여 이를 ‘휴대 편의적’ 문화로 친다면, 옛날에는 비(碑), 각(閣), 문(門), 정(亭) 등 휴대가 불가능하고 공간에 고정해 전시하는 ‘고정 전시적’ 문화로 양분하여 생각해 봄직도 하다.

공적을 높이 사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 그 징표로서 본인의 영예를 담은 소품을 달고, 갖고, 필요한 때 보이고, 하도록 수여한다. 지극히 동적인 것이 오늘의 복잡한 사회를 반영하는 단면인 듯하다.

이따금 체육 유공자들의 공로를 알리는 장면에서 비추어지는 각종 상패 트로피는 마치 한 물품 판매 점포를 들여다보는 것 같고, 이렇게 대량 수여가 본연의 그 희소가치를 떨어뜨려서 본인의 명예를 오히려 해치는 것이 아닐지 객쩍은 염려도 된다.

요새 같이 문물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고을마다 그 고을에 부임하는 영감들이 자기 치적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서 재임 중에, 또는 이임 후에 스스로 지역 백성들의 이름으로 몇몇 아전을 시켜서 ‘공적비’를 만들어 세우도록 해서 훗날을 도모하는 정상 모리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비답지 않은 비가 있는가 하면 전혀 신선한 비도 있다. 효자비와 열녀비가 그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 큰 고을이 아니라서 관아가 없다. 따라서 공덕비 같은 것은 없지만 순박한 마을 인심을 상징이라도 하듯 효자문 열녀문이 몇 개씩 줄지어 곱게 단청한 비각 속에 모셔져 있다.

사방이 탁 트이고 멀리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해변의 해당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이곳 효자문과 열녀문의 단청에 어려서 길손의 발을 멈추고, 길손의 손을 문설주에 붙여서, 길손의 눈을 비석에 머무르게 한다.


물이 많아 돌다리를 건너갈 수 없어서 큰 다리를 건너간다. 장마 끝 큰 물소리를 뒤로하면서 걸어간다. 먼 길을 돌아서 ‘동 자원’ 우리 밭으로 가노라면 한길 가의 효자문 열녀문들이 줄지어 선 곳을 스쳐 지나게 되는데, 홍살문 사이로 들여다본들 무슨 소리인지 난 알 수 없다.

내 물음에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효자문을 간단히 설명하지만, 효성스러운 아들들의 어른 공경쯤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내가 주가 돼서, 내 입장에 서서 간단히 생각할 수 있기에 쉽사리 끄덕였다.

하지만 열녀문을 설명하시는 데는 꽤 오래 걸어야 했고 내겐 그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할머니의 한숨은 길고 깊었다.

당신의 오늘을 옛사람의 행적으로, 옛사람의 절개를 당신 지금의 고통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할머니의 전율을 어린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할머니도 누가 열녀문을 세워 줄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한 말씀을 어린 손자에게 던지고서, 할머니는 바닷가 먼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뒤 잊었든 나를 찾아서 양옆을 둘러보시고는 내 손을 잡고 말없이 걸으셨다.


돌이켜 생각한다.

할머니의 일생이 함축돼서 절절히 흐르는 그 한마디, 이제 짧은 생의 황혼에 접어든 내가 그 외마디 한숨 섞인 말씀을 깊이 새기는 것은 할머니가 일생을 그 하나의 비각을 위안으로 하루하루를 지워나갔다는 사실에 목이 메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지금처럼 농짝에 넣어서 잠재우는 종이 문화에서 사셨다면 그 긴 여정을 어떻게 걸으셨을까!

그 시대에 맞는 ‘공간 고정 전시적 비각 문화’에 할머니는 이지러지셨다./외통-

8091.001110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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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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