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에게 하나밖에 없는 누이동생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도록 문밖출입 못 하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잘 자라든 ‘정희’가 몇 해 전부터 시름시름 하더니만 허리가 붓고 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럭무럭 자랄 때인데도 제대로 자라기는커녕 창백한 얼굴이 되어 등이 굽어지며 굽은 등의 환부에서 분비물이 나오며 성장이 멈추었다.
‘희’의 고통은 오죽이나 할까. 마는, 이를 백방으로 치료해도 완치하지 못하는 윤의 부모님과 온 식구들의 하루하루는 침울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은 다른 집 여자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희’의 생각에 우뚝우뚝 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윤의 눈은 환각에 쌓여 ‘희’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써 그 앞에 다가가다가 머리를 흔들곤 했다.
윤이 방학을 맞아서 객지 생활을 봇짐에 싸 들고 고향 집에서 지낼 때의 어느 날이었다.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차라리 감고 싶은 광경이 벌어졌다. 아니 아예 증발하거나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이럴 때를 일러서 환장(換腸)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것 같다. 무슨 말로도 나타낼 수 없는 슬프고 슬프다.
할머니 무릎에서 ‘희’ 스스로, 짚으라기 같은 두 팔에 매달린 단풍잎같이 얇디얇은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서 치마폭을 돌리며 팔을 벌려 나비같이, 아니다 천사와 버금가는 춤을 추어가며 오빠 ‘윤’을 향해 야윈 얼굴에다 웃음을 그리며 제 마음과 제 영혼을 오랜만에 만난 오빠 윤에 실어 보낸다.
몇 바퀴를 돌며 팔을 벌려 아래로 내렸다가 어깨까지 올렸다가, 때로는 쪽 팔로 때로는 양팔로 발장단에 맞추어 가며 허리를 짚어가며 돌았다.
학이 깃을 펴는 것 같기도 하고 솜구름이 솟대 위를 머무는 것 같기도 한, 부드럽고 연 한 춤사위였다. ‘윤’에 비친 ‘희’의 춤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고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들려줄 노래와 노랫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학교에서 부르는 아이들 노랫소리와 풍금 소리가 바람을 타고 커졌다 작아졌다, 때로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
“이젠 끝날 시간이 됐다 ‘희’야, 다음 시간 종 치면 또 하자”
할머니의 이 말씀에 ‘희’의 춤은 그치고 할머니는 다시 ‘희’를 무릎에 앉혔다.
‘윤’은 달려가 ‘희’를 조심스럽게 보듬었다. 앙상하게 야위어 가볍다. 참지 못하고 할머니와 더불어 소리 내어 울었다. 말이 필요 없다. 더 할 말이 없다. ‘윤’은 밖으로 튀어나왔다.
‘윤’이 하늘을 향해 또다시 눈을 감는다.
‘윤’은 ‘희’에 대한 모두를, 오늘까지 네 인고를 떠 올린다.
뜸을 뜨면서 참아내는, ‘희’의 희망 어린 눈동자와 고통에 다문 어금니와 절망에 떨어지는 눈물이 백지 같은 얼굴 위에 얼룩지는, 나날을 지냈을 ‘희’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몸은 자지러든다.
조용하든 방안에선 ‘희’의 짧고 꺼지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또 뜸을 뜨는 그것으로 생각하는 ‘윤’의 가슴은 하얗게 비었다가 잠시 후엔 새까만 먹지 장이 되었다.
‘희’가 그렇게도 가고 싶든 이승의 학교엘 가지 못하고 끝내 학을 타고 솟대를 거쳐서 먼 나라 학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윤’은 또다시 하늘을 향해서 눈을 감는다.
‘희’야, 네 몫을 다해 살았어야 할 오빠 ‘윤’이 네가 내려다보는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