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뿔테안경과 길쭉한 안경집은 반닫이 속의 서랍 안에 언제나 그렇게 놓여있고 아무도 그 내력을 알려 주는 이는 없다.
책궤와 연어 잡는 작살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내게 또렷이 남아 있는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이것들은 모두 아버지의 소품이 아니며 할머니나 어머니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분명 할아버지 것인데, 인제 와서 그 내력을 알고 단정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할아버지가 종손인데도 불구하고 당시로서는 생각조차 못 하던 돌출행동을 하면서 집안의 살림을 탕진하고 잠적했는지, 아니면 뜻을 두고 떠났는지, 아무튼 ‘백러시아’ 여인과 사다가 잠시 다니러 왔을 때 아버지를 낳게 되었다는 할머니의 간단한 설명이 있을 뿐, 더는 알려 주시지 않으신다.
아마도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한 맺힌 지난날을 저어 되살리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뿔테안경과 작살과 책궤와 수정(水晶)도장, 이런 것들은 한량 아니고는 소용없는 것들임이 틀림없는데, 그렇다면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한 것인가? 수수께끼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입에 담지 않으신다. 그저 일만 하실 뿐이다. 무언의 교훈이런가, 아니면 처절한 항변이런가, 일과 무슨 인연이 있을 듯도 한 아버지의 몸가짐이 역력하시다. 이제 누군들 알겠는가?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지금의 처지, 기막힌 이 일을 단 몇 개의 유품만으로 유추하기란 무리인 줄 알면서도 좋건 나쁘건 내 조상이고 내 뿌리의 일이니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도 머리에 꽉 차 있다.
진실은 그래서 언제나 그 값이 보배롭다. 허상이 아니니까. 드러나리라. 훗날 통일이 되고서 알아보고야 말 것이다.
내가 우리 조상의 일을 모르는 척, 알아내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것은 모두 내 죄이다. 그 벌은 이 순간에도 고통으로 다가온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