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제

외통넋두리 2008. 6. 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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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1763.010106 사제

우리의 힘이든 남의 도움이든 간에 이제는 해방된 새 천지에서 지나게 되었다. 너와 나를 가릴 것 없이 들떠서 며칠을 지냈다. 명색이 배우고 가르치는 사제의 사이건만 이렇다 할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아쉽지만 우리들의 힘이 이렇게밖에 안 되는 것을 어찌하겠느냐며 서운한 마음을 주고받는 인사가 있어야 당연히 하련만 당시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밤새에 사라지고 소식도 끊겼다.

해방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이 엄청난 변화에 대응하기란 벅찬 나날이었다. ‘조선사람’ 선생은 불과 두셋밖에 되질 않았는데 이들 선생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여 앉아서 머지않아 들이닥칠 소련군의 이야기가 이렇게 저렇게 들려오고 삼십팔도선을 갈라 이북은 공산사회가 이남은 자본주의 사회가 된다는 것, 우리가 있는 이곳은 아들딸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사회가 되고 남쪽은 있는 사람은 살고 없는 사람은 죽어야 하는 사회가 된다는 간단한 상식이 전부이다.

지금처럼 학교 밖에서의 교육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힘도 시설도 없을 때였으니 오로지 학교에서만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교사의 공백은 우리 배움의 공백으로 이어졌다. 차츰 정신을 차리게 되고 점점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선생은 어디 가고 학생만 가득
천장은 '텅' 하니 메아리 없이
병아리 터럭 짧아 나래짓 요란

교정은 비어있고 나뭇잎 숙여
단상의, 호령 소린 빈 하늘 울려
줄 설 일 없는 병아리들 먼지만 자욱이.

화단의 해바라기 고개 숙여 외면
운동장, 한구석의 방공호 웃음
하늘의 흰 구름 비행기 꼬리라나

종지기 종 끈 잡고 둘러본 허공
교무실, 선생 끈 신 나란히 공손
신발장의 우리 신발 흩으러 엉망

새날이 어떤지 무리 지어 머리 앗질.
지난날이, 무엇인지 어리둥절 쩔쩔
어미 잃은 병아리 모이 없어 시름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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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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