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아침을 굶었습니다.” 생원(生員)의 살진 손바닥이 야윈 내 무릎 위에 하얗게 펼쳐졌다.
칠흑의 검은머리 조아려. 흑백(黑白)을 견주니 백발의 나 없는 지갑 열릴 리 없지만,
수첩 갈피에 끼인 녹색의 작은 배추 잎, 두 잎 보고 나, 마음이 갈린다.
샌님은, 배춧잎이 하얀 쌀밥이 되어 목적을 조이고.
나, 다시 거두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반타작 하자고, 속으로 일렀다.
덩치 좋은 샌님 한 장 받아 들고 서양 두루마기 깃 날리며 계단으로 사라졌는데,
흰머리 내가 도를 닦는지 검은 머리 샌님이 득도 했는지.
아무튼. 몽땅 주지 못한 내가 옹졸하여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볍다.
옆에서 지켜보던 낯선 아주머니 빙긋이 웃는다.
흰 머리 내가 바보인가,
검은 머리 샌님이 바보인가,
말하지 않는다.
하얀 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가볍다.
전동차가 배추 잎 한 장 날리려 광음을 울린다.
내 옹색함 날리려 바람을 몰고 온다.
낯선 아주머니 타고 나도 탄다.
그래도 내 수첩 속엔 배추 잎 하나,
거금 일 만원이나 남아 있다.
저녁도 먹을 것이다.
8013.110121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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