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외통넋두리 2011. 1. 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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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3.110121 구도자

“ 선생님 아침을 굶었습니다.”

생원(生員)의 살진 손바 닥이
야윈 내 무릎 위에
하얗게 펼쳐졌다.
칠흑의 검은 머리 조아려.
흑백(黑白)을 견주니
백발의 나, 없는 지갑
열릴 리 없지만,

수첩 갈피에 끼인
녹색의 작은 배춧잎,
두 잎 보고
나, 마음이 갈린다.

샌님은,
배춧잎이
하얀 쌀밥이 되어
목적을 조이고.

나, 다시
거두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반타작하자고,
속으로 일렀다.

덩치 좋은 샌님
한 장 받아 들고
서양 두루마기
깃 날리며
계단으로 사라졌는데,

흰머리
내가 도를 닦는지
검은 머리
샌님이 득도했는지.

아무튼.
몽땅 주지 못한 내가
옹졸하여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볍다.

옆에서 지켜보던
낯선 아주머니
빙긋이 웃는데,

흰머리
내가 바보인지,
검은 머리
샌님이 바보인지,
말하지 않는다.

하얀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가볍다.

전동차가
배춧잎 한 장 날리려
소리 지르고
내 옹색 날리려
바람을 몰고 온다.

낯선 아주머니 타고
나도 탄다.

그래도
내 수첩 속엔
배춧잎 하나,
거금 일 만원이나
남아 있다.

저녁도
먹을 것이다. /외통-

8013.110121 구도자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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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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