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생攝生

외통인생 2022. 2. 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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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생攝生​


얻어들은 얘기지만 암 수술 후 5년을 버티면 완치로 본단다.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내가 밝힐 일도, 알아내는 방법도 없다. 나는 이제 꼬박 61개월 즉 5년을 이겨냈다. 더욱이 이 고비가 졸수[卒壽(卒=卆)]라는 구십 나이에 발 들여놓게 되니 비로써 내 생각을 토할 만한 거리가 되었기에 처음부터 이제까지의 모든 것, 맺히고 꺾이고 풀렸던 지난 일을 돌이켜 새김질한다.

동네 내 외과 의원에서 드러난 상처거나 부스럼의 치료를 받기는 했어도 내 나이 여든다섯 살이 되도록 종합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다행스레 이따금 병원 환자복을 입어 봤으면 싶은 생각을 문득 가질 때조차 있었다. 그때의 그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곡절 끝에 암 진단을 받아 수술대 위에 올라탔다, 아! 이대로 저승으로 직행할 수도 있겠구나고 여기면서도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아마도 믿음의 덕이 아니었겠나 싶다.

수술은 끝났다. 애들 말에 의하면 대장을 40cm 잘라냈고, 그것이 암 덩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단다.

앞으로의 암 진행 경과를 알려주지 않으니 나는 아직 모른다. 입원 생활은 고작 한 달이었다. 받아야 하는 항암치료거나 방사선치료를 내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내 의지로 내 몸을 이끌고 가야 하는 처지라서 나이를 생각하고, 이미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내 수명은 내가 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하늘이 내린 수명을 마다하고 버틸 수는 없으리라는 나름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입원을 주선한 아들딸들의 효심으로 절제 수술을 받고 일어난 것, 무한이 고맙고 기쁘기 그지없다. 애들에게는 심적 물적부담이 컸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말하고 쓰다듬는, 드러난 언행을 하지 못하는 내 성정 탓이니 애들도 짐작하리라 생각하며 더한 위안을 받는다.

고집은 이어져서 수술 후 정기 검사도 사양하고 버텨내면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남다르다.

병원을 불신해서도 아니고 애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아닌 이 오만은 단지 내 수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단순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그 하늘의 뜻에 맞갖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내가 해야 하는 의지와 그에 따른 결과가 내게 지워진다는 생각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평생 잊히지 않는 마음 다짐은 몸과 마음이 이룩된 그 목적을 헤아리는 것이다.

마음으로 말하면 스스로 삼가는 것, 굳이 남을 꺾어 누르려 하지 않는 것, 거기엔 세상은 음양이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마음가짐이 자리한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일등과 꼴찌의 관계다. 일등과 그 이하 꼴찌까지의 모든 이가 일등을 만들었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평생의 나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이는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리라. 아무튼 내가 못 미치니 체념하는 패배 의식의 잠재라고 모두는 비웃을 만한 고집스러운 내 성정임을 스스로 안다.

내가 스스로 지은 몸뚱이가 아니니 내 마음대로 내 몸을 이끌어 갈 수 없음을 알고, 지은이는 왜 이 지체를 요렇게 만들고 이 몸에 달린 온갖 부분, 외형상 나타나는 얼굴에 붙어있는 것, 몸에 붙어있는 것, 몸속에 들어있는 모든 장기의 있을 이유 등을 물어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이렇게 많은 부분을 죄다 알 수 없지만 내 눈에 보이는 곳이라도 지은이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엉뚱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뼈마디는 왜 있으며 어떻게 지탱되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해서 무릎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무릅쓰고 걷고 계단을 오르고 굽혔다 폈다 한다. 그러면 아무 일 없는 듯 생생해지는 것이다. 곧 내 몸 전체가 아직 허물어지지 않을 나이인데 한 부분만 내 잘못된 돌봄으로 해서 일시적 경고 신호를 나에게 보낸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무튼 아직 살아서 활동한다. 활동? 고작 일정표 짜놓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지켜내는 것이다. 혼자 사니 가사노동, 건강 지키기, 때로 지인들 만나기, 이렇게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나름의 신앙 여정과 더불어 서성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내일은 모른다, 해서 늘 분주히 준비할 뿐이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 이웃의 관심에 감사하고 아들 내외와 딸 내외와 손자 손녀들의 사랑 속에 묻혀 헤엄칠 뿐이다. 다만 내가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세상에서 맺은 모든 인연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음을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9302.220223 / 외통徐商閏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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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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