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2일,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1879~1948) 선생의 외손녀 후미코(駒田文子) 여사가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든 여러 저서와,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서간첩 복제본을 보내왔다. 2012년 내가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 1년간 머물 때, 그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던 후지쓰카 소장 고서를 50종 넘게 찾아내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쓴 인연을 기념해 보내준 선물이었다.
중간에 후지쓰카 선생의 친필 한 점이 들어있었다. “대나무 밖 한 가지가 기울어 더욱 좋다(竹外一枝斜更好)”고 쓴 일곱 자다. 그 옆에 ‘소헌학인(素軒學人)’이란 호와 ‘망한려(望漢廬)’란 인장이 또렷했다.
찾아보니, 소동파가 쓴 ‘진태허의 매화시에 화답하다(和秦太虛梅花)’의 제8구였다. 중간 네 구절은 이렇다. “다정해라 말 세우고 황혼을 기다리니, 남은 눈 더디 녹고 달이 일찍 나오네. 강 머리 일천 그루 봄 저물려 하는데, 대숲 밖 한 가지가 기울어서 더욱 좋다(多情立馬待黄昏, 残雪消遲月出早. 江頭千樹春欲闇, 竹外一枝斜更好).”
잔설은 녹지 않고 달부터 뜬 저녁, 이른 봄의 하루 해가 어둑해지는데, 대숲 너머로 비스듬히 고개 내민 매화 한 가지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는 얘기다.
신위(申緯·1769~1845)의 ‘매화' 시는 이렇다. “두자미 강변의 한 그루, 소동파 대숲 밖 한 가지. 매화의 자태 확 살아나니, 기울어 더 좋은데 드리워 피었구나(子美江邊一樹, 子瞻竹外一枝. 現活梅花身分, 斜更好發垂垂).” 첫 구는 두보가 배적(裵迪)의 조매(早梅) 시 7, 8구에서 “강변의 한 그루 낮게 드리워 피었는데, 아침저녁 사람 절로 머리 희라 재촉하네(江邊一樹垂垂發, 朝夕催人自白頭)”의 구절에서 가져왔다. 강변 대숲 너머 드리운 매화와 만나 다시 맞은 새봄에 그리움을 얹었다.
후지쓰카 선생에게 추사는 건륭(乾隆) 가경(嘉慶) 연간 청조 학예(學藝)의 푸른 대숲 속에서 뜻하잖게 만났던 매화 한 가지였을까? 대숲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설중매 한 가지. 이듬해 7월, 나는 동경에 가서 그녀와 함께 동경 교외에 자리한 후지쓰카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 내 책을 올리고 큰절을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