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8년, 72세의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효종에게 ‘국시소(國是疏)’를 올렸다. 글의 서두를 이렇게 열었다. “전하께서 바른 정치를 구하심이 날로 간절한데도 여태 요령을 얻지 못하고, 예지(叡智)를 하늘에서 받으셨으나 강건함이 부족하여, 상벌이 위에서 나오지 않고, 정사와 권세가 모두 아래에 있습니다. 대개 완악하고 둔한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얻으려 안달하고 잃을까 근심하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비루한 자들이고, 겉으로는 온통 선한 체하면서 속으로는 제 한 몸만 이롭게 하려는 자는 성인께서 말씀하신 가짜요, 말만 번지르르한 자들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행세하는 자는 대부분 이 같은 부류입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 근심스레 위에서 외롭게 서 계시어, 바깥 일을 깜깜히 보지 못하시니, 나라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 신은 진실로 전하를 위해 장탄식하는 것으로 부족하여 통곡하고 싶습니다.”
두 부류의 가짜들을 꼽았다. 얻으려 조바심을 내다가 잃을까 근심하는 비루한 자들과, 번드르르한 말로 제 이익만 챙기는 자들이 그것이다. 앞쪽은 『논어』 「양화(陽貨)」에 나온다. “비루한 자들이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얻으려고 안달하고, 얻고 나면 잃게 될까 근심하니, 진실로 잃을 것을 근심하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鄙夫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 권력을 얻으려고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다가, 일단 쥐고 나면 잃지 않으려고, 나랏일은 뒷전이고 저희들끼리 못 하는 짓이 없다. 사직의 안위(安危)와 생민(生民)의 사활보다 일신의 영달과 동당(同黨)의 이익을 늘 앞세운다.
이를 이어 다시 『논어』 「안연(顏淵)」에서 “곧은 자를 기용하여 굽은 자 위에 두면 굽은 자를 곧게 만들 수 있다(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고 한 말을 인용했다. 만사는 인사(人事)인데, “지금 우리 전하께서 근심하시는 것이 무슨 일이길래, 근심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시대마다 어진 인재는 부족하지 않으니, 전하께서 정성스레 구하지 않고, 정밀하게 살피지 않아서이지, 어찌 인재가 부족한 세상이 있겠습니까?”라고 찔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