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살펴보는데 '천리여면(千里如面)'이라 새긴 인장이 눈길을 끈다. 용례를 찾아보니 송순(宋純)이 "천리에도 대면하여 얘기 나눈 듯, 한마디 말로 마음이 서로 맞았네(千里如面談, 一言而心契)"라 했고, 이익(李瀷)은 "천리에 대면한 듯, 종이 한 장에 정을 다했다(千里如面, 一紙盡情)"고 쓴 것이 있다. 그제야 이 인장이 편지의 봉함인(封緘印)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먼 벗에게 편지를 써서 봉한 뒤, 그 위에 이 도장을 꾹 눌러서 찍었다.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전했다.
몇 장 뒤에는 '마음속 말을 다 못 한다네(寸心言不盡)'란 인문(印文)도 나온다. 이것도 필시 봉함인이다. 찾아보니 당나라 때 시인 전기(錢起)가 지은 '협객과 만나고(逢俠者)'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는 이렇다. "연조(燕趙) 땅 슬픈 노래 부르는 선비, 극맹의 집에서 서로 만났지. 맘속 얘기 다 말하지 못하였는데, 앞길의 하루 해가 장차 저무네(燕趙悲歌士, 相逢劇孟家. 寸心言不盡, 前路日將斜)." 나그네 길에서 마음 맞는 협객과 만나 마음속 깊이 담아둔 비분강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날이 장차 저물어 가니 이제는 일어서서 각자 가던 길을 가야만 한다. 작별이 아쉽다는 얘기다.
이런 도장 하나 새겨 책상맡에 놓아두고, 가뜩이나 쓸 일이 줄어든 편지를 부칠 때면 풀칠한 자리에 꾹 눌러 찍고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 적지는 못하네' 하는 사연으로 함께 보내고 싶다.
우리 옛 시조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라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 리오면 지척도 천 리로다. 우리도 각재천리(各在千里)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마음이 맞통하는 사이라면 천 리 거리도 장애 가 되지 못한다. 바로 곁에 있어도 천 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 리 멀리 헤어져 있어도 늘 지척에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이인가?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만남이 끊기고, 사람 간의 살가운 접촉도 줄어만 간다. 자녀가 멀리 해외에 나가 있는 부모 마음은 노심초사 타들어 간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