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凝庵)은 이상정(李象靖·1711~ 1781)이 1767년 고산정사(高山精舍)를 지을 때 오른편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이 방에 '응암명(凝庵銘)' 10수를 지어 걸었다. 먼저 제4수. "수렴하고 요약하여, 온통 가득 함양하리. 기미를 깊이 연구해서, 자세하고 합당하게(收斂造約, 渾涵充養. 硏幾極深, 纖悉曲當)." 함양하는 공부는 수렴과 요약에서 나온다. 잔뜩 벌여놓기만 해서 끝간 데를 모르면 함양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작은 기미도 깊이 파고들어 석연해질 때까지 놓지 않는다. 이런 시간이 쌓여야 내면이 충만해진다.
다음은 제8수다. "옥을 잡고 물 가득 찬 그릇 받들듯, 잠깐의 사이라도. 조금씩 밟아 나가, 오래 힘써 공 이루리(執玉奉盈, 顚沛造次. 浸漸經歷, 力久功至)." 귀한 옥을 손에 들었으니 떨어뜨릴까 조심스럽고,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받들어 올리려니 쏟을까 염려스럽다. 잠시라도 이 같은 마음을 지녀, 오래 몸에 배게 하면 그제야 학문의 보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집옥봉영은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나온다. "효자는 옥을 잡은 듯이 하고, 물이 가득 찬 그릇을 받들듯이 하여, 조심조심 공경하여 마치 감당하지 못하는 듯이 하고, 장차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듯이 해야 한다(孝子如執玉, 如奉盈, 洞洞屬屬然, 如弗勝, 如將失之)"고 했다.
금정찰방으로 좌천되어 있던 정약용에게 채서공(蔡敍恭)이 편지를 보내 이럴 때일수록 안으로 머금어 쌓아 물 가득한 그릇을 받든 것처럼 삼가라는 '함축봉영(含蓄奉盈)'의 훈수를 둔 일이 있었다. 정약용은 답장에서 말했다. "일러주신 함축봉영의 말씀은 감히 고맙게 간직하지 않겠습니까만, 다만 빈 골짜기의 마른 연못인지라, 애초에 물 한 방울 쌓아둔 것이 있지 않고 보 니, 비록 발설(發洩)코자 한들 터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示喩含蓄奉盈之說, 敢不感佩. 但空壑涸池, 未始有貯得涓滴者, 雖欲發洩, 無可決出者也)."
들고 있는 그릇의 물이 엎어질까 봐 조심스럽고, 귀한 옥을 떨어뜨려 깨뜨릴까 봐 아슬아슬하다. 안타까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하더라도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는 마음을 멀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