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 나들이

외통인생 2019. 8. 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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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나들이
1300.010130 송산 나들이


잊히지도 않고 더 이어지지도 않고
, 눈을 감고 아무리 몸부림을 처 봐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둘째 외삼촌댁 송산리의 나들이다. 단 한번, 내 기억이 이밖에 없으니 단 한번이랄 밖에 없지만, 지금도 그 동네를 포근한 정감이 가서 잊지 못한다. 내 평생 잊을 수가 없다.


한 겨울에라도 햇볕을 쬐는 담 밑의 조무래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성싶고
, 제기 차는 애의 실수로 떨어뜨린 제기가 앞 집 담 밑에 쌓인 눈 속에 박혔을 때 다른 녀석은 이를 줍는 애의 꽁무니를 차 넣어서 한판싸움이라도 벌어질 듯한, 그런 동네다. 흙 담이 눈높이로 가지런히 높지 않아 목 빼고 부르면 곧 달려 나올 내 동무들의 집처럼 보였다.


고만고만한 산
, 산이라고 하기엔 높이가 너무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엔 소나무가 울창하여 금방 호랑이라도 나올 것 같은데도 오히려 몰려다니는 텃새소리가 요란하여 우리 집 뜰 안을 걷는 것 같다. 멀리 서쪽에 태백준령이 희미하다. 저 산줄기에서 가지 쳐서 추지령골짝을 만들고 내려오다 잠간 허리를 굽혀 헐떡이는 기차를 등허리로 넘기고 다시 금란의 연대봉 까지 단숨에 달려온 등성은 목이 말랐는지 그 끝에 금란굴을 뚫어내어서 바닷물을 퍼마시고 있다. 이 산등성이 중간 언저리의 양지 바른 곳에 나직이 기대앉은 송산리는 둘째 외삼촌이 사시는 동네다. 그래서 내 마음이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외삼촌 집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 여름은 소나무가지 사이를 훑은 바람이 먼저 외삼촌 집을 구석구석 식히고 겨울엔 들판을 내지른 바람이 늘어선 앞집에 부닥쳐서 돌아가고 담을 넘은 햇볕이 도르르 말려서 집안을 쏘아대는 곳, 고개를 처들면 동네를 훑어볼 수 있는 자그마한 집이었다.


뽀얗게 매질한 안팎이 분통같아서 어디에 손대기조차 머뭇거려지게 정갈하고 단조롭다
. 어울리지 않는 축음기가 하얀 벽에 붙여놓은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여서, 누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은 입을 다물고 있다. 까만 신식물건이 매질 흙의 흰색에 퉁겨서 더욱 돋아 보인다. 이 축음기를 들을 사람을 위하여 어머니가 오셨고 내가 왔다. 누구의 결혼식인지도 모른다. 이 축음기를 그저 눈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누가 누군지 외삼촌의 얼굴도
, 그 날의 주인공도, 부엌을 들락거리는 여럿의 머리 쪽진 이들도, 모두가 내 기억에서 지워진 외삼촌의 일가나 친척일 텐데 나는 아무런 끄나풀이 될 수 없었는지 지금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이럴진댄 무엇 때문에 짤막한 한 토막을 남겨서 이토록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내가 야속하고 얄밉다. 차라리 깡그리 잊게 해서 하얀 종이 위에 내가 마음대로 그리고, 마음대로 새겨 넣도록 한다면 온전히 다른 세상이라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다 내 탓이지만 낸들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는가
. 완벽한 기억으로 모태로부터 이날까지의 모든 것,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모든 것을 낱낱이 기억하여 이 세상을 살다가는 보람을 찾고 싶다면 지나친 것일까? 지금은 내가 기억한 것만 내 몫이고 내가 잊고 있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것인가? 어둡고 답답하다. 그래도 이렇게 몸부림치니 외사촌 동갑내기 하나는 내 몫이 됐다. 떠오른 그 이름 박 재석(在錫)’.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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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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