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崔致遠)이 양양(襄陽)의 이상공(李相公)에게 올린 글에서 자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주옹반낭(酒甕飯囊)의 꾸짖음을 피할 길 없고, 행시주육(行尸走肉)의 비웃음을 면할 수가 없다(酒甕飯囊 莫逃稱誚 行屍走肉 豈逭任嗤)." 주옹반낭과 행시주육은 고사가 있다.
주옹반낭은 후한(後漢) 때 예형(禰衡)이 "순욱은 그래도 억지로라도 함께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나무 인형이나 흙 인형이어서 사람 같기는 한데 사람 같은 기운이 없으니 모두 술독이나 밥통일 뿐이다(荀彧猶强可與語 過此以往 皆木梗泥偶 似人而無人氣 皆酒甕飯囊耳)"라 한 데서 나왔다. '포박자(抱朴子)'에 나온다. 먹고 마실 줄만 알고 아무 역량도 없는 무능한 사람을 비유할 때 쓴다. 논형(論衡) '별통(別通)'에서는 "배는 밥 구덩이(飯坑)이고, 장은 술 주머니(酒囊)이다"라고도 했다. 사람이 허우대만 멀쩡해서 하는 일 없이 밥이나 축내고 술집에서 기염을 토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행시주육은 후한 사람 임말(任末)의 고사에서 나왔다. 임말이 스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문상하고자 급히 달려가다가 길에서 죽게 되었다. 그는 조카에게 자기 시신을 스승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며 말했다.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면 죽더라도 산 것과 같고, 배우지 않는 자는 살았어도 걸어 다니는 시체요 달려가는 고깃덩이라고 말할 뿐이다(夫人好學 雖死若存 不學者雖存 謂之行屍走肉耳)." '습유기(拾遺記)'에 나온다.
이경전(李慶全)이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훈계했다. "내가 볼 때, 세상에서 득실을 근심하는 자는 행시주육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에 해당하니, 또한 불쌍하지 않겠는가?(余視塵埃中以得失爲患者 不 啻若行屍走肉 此佛家所謂衆生 不亦可矜乎哉)" 잗다란 이익에 일희일비하는 중생의 삶을 버리고, 큰길로 뚜벅뚜벅 걷는 군자의 삶을 살라는 주문이다.
사람들은 밥과 술로 배불리 먹고 신나게 마실 생각뿐, 공부로 나날의 삶을 향상시킬 생각은 안 한다. 사람이 배포가 크다는 말을 들을망정, 밥통이나 술독 소리를 듣고,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란 말을 듣고 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