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의심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믿음이다. 어진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짊이고, 못난 자를 천하게 보는 것도 어짊이다. 말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고 침묵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다. 이 때문에 침묵을 안다 함은 말할 줄 아는 것과 같다(信信信也, 疑疑亦信也. 貴賢仁也, 賤不肖亦仁也. 言而當知也, 默而當亦知也. 故知默猶知言也)."
순자(荀子)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실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덮어놓고 믿지 않고 살피고 따져보아 믿을 만한 것을 믿는 데서 생긴다. 의심할 만한 일을 덩달아 믿어 부화뇌동하면 뒤에 꼭 후회하고 책임질 일이 생긴다. 다 잘해주고 무조건 베푸는 것이 인(仁)이 아니다. 그의 언행을 보아 그가 받을 만한 대접만큼 해주는 것이 인이다. 가리지 않고 잘해주면 그가 달라질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한가지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른말로 상황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지혜다. 때로는 입을 꾹 다문 침묵이 더 무서울 때도 있다. 침묵이 언어의 힘을 넘어서는 것은 아주 가끔이다.
이어지는 말. "알면서 모른 체하고, 나쁜데 고상한 듯 굴며, 속임수를 쓰면서 교묘하고, 쓸모없는 말을 하지만 번드르르하며, 도움이 안 되는 주장을 펴면서 꼼꼼한 것은 다스림의 큰 재앙이다. 편벽되게 행동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그른 것을 꾸며서 그럴듯하게 보이며, 간악한 자를 아껴서 은혜를 베풀고, 반지르르한 말로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옛날에 크게 금한 것이다(知而險, 賊而神, 爲詐而巧, 言無用而辯, 辯不惠而察, 治之大殃也. 行辟而堅, 飾非而好, 玩奸而澤, 言辯而逆, 古之大禁也)."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음험하게 속내를 숨긴다. 못된 심보를 안 들키려고 겉꾸민다. 속임수는 항상 그럴싸해 보이고, 쓸데없는 말이 더 현란하다. 희한한 짓을 하면서 고집을 부린다. 잘못을 해놓고도 인정하지 않고 자꾸 꾸며서 좋다고 우긴다. 간사한 자를 곁에 두고 총애한다. 말은 청산유수인데 막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자꾸 벌어지면 그 사회나 조직에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증좌다. 믿을 것을 믿고 의심할 것은 의심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불편해도 진실을 따르는 것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