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년 11월 11일, 형조에서 천주교 신자로 검거된 중인(中人) 정의혁과 정인혁, 최인길 등 11명의 죄인을 깨우쳐 잘못을 뉘우치게 했노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정조가 전교(傳敎)를 내렸다. "중인들은 양반도 아니고 상민도 아닌, 그 중간에 있어 교화시키기가 가장 어렵다. 경들은 이 뜻을 알아 각별히 조사해서 한 사람도 요행으로 누락되거나(幸漏), 잘못 걸려드는(誤罹) 일이 없도록 하라."
행루오리(幸漏誤罹)는 운 좋게 누락되거나 잘못해서 걸려드는 것을 말한다. 죄를 지었는데 당국자의 태만이나 부주의로 법망을 빠져나가면 걸려든 사람만 억울하다. 아무 잘못 없이 집행자의 단순 착오나 의도적 악의로 법망에 걸려들어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부정이나 청탁이 개입되기라도 하면 바로 국가의 법질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법 집행의 일관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조는 국가가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할 경우 자칫 정적(政敵) 타도의 교활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악용될 것을 늘 염려했다. 그래서 상소가 올라올 때마다 동문서답으로 딴청을 하며 이 문제가 정면에서 제기되는 것을 한사코 막았다. 임금이 천주교에 우호적인 것이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있었을 정도였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같았다. 여러 도의 옥안(獄案)을 심리할 때 내린 하교에서는 "반드시 죽을죄를 지은 자도 살리려 하는 것이 임금의 마음이지만, 마땅히 살아야 할 자가 잘못 걸려들고(當生者之誤罹), 마땅히 죽어야 할 자가 요행히 면하는 것(當死者之倖逭)은 둘 다 형벌이 잘못 적용된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오리행환(誤罹倖逭)이라고 했다. 뜻은 같다.
1786년 10월 15일 김우진의 방자한 행동에 그의 이름을 사판(仕版)에서 삭제할 것을 명할 때도 "신분이 높고 가깝다 해서 봐주지 않고(無以貴近而假貸), 성글 고 멀다고 해서 잘못 걸려들지 않게 한다면(無以疎遠而誤罹), 무너진 기강을 진작할 수 있고, 어지러운 풍속을 가라앉힐 수 있다"라고 했다.정조가 세상을 뜨자마자 이 같은 원칙이 폐기되면서 천주교 박해의 광풍이 불었다. 사람들은 온통 혈안이 되어 천주교의 죄를 씌워 정적을 제거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여 그 재산을 탈취했다. 나라에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