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역취(醒日亦醉)
예전 한 원님이 늘 술에 절어 지냈다. 감사가 인사고과에 이렇게 썼다. '술 깬 날도 취해 있다(醒日亦醉).' 해마다 6월과 12월에 팔도 감사가 산하 고을 원의 성적을 글로 지어 보고하는데, 술로 인한 실정이 유독 많았다. "세금 징수는 공평한데, 술 마시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다(斛濫雖平, 觴政宜戒)." "잘 다스리길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 술버릇을 어이하리(非不願治, 奈此引滿)." 정약용이 '다산필담(茶山筆談)'에서 한 말이다.
'상산록(象山錄)'에서는 또 이렇게 썼다. '술을 즐기는 것은 모두 객기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아 맑은 운치로 여긴다. 이것이 다시 객기를 낳고, 오래 버릇을 들이다 보면 술 미치광이가 되고 만다. 끊으려 해도 끊을 수가 없으니 진실로 슬퍼할 만하다. 술을 마시고 주정하는 자가 있고,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자가 있고, 마시면 쿨쿨 자는 자도 있다. 주정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폐해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잔소리나 군소리에 아전이 괴롭게 여기고, 길게 누워 깊이 잠들면 백성이 원망한다. 어찌 미친 듯이 소리치고 어지러이 고함지르며, 과도한 형벌과 지나친 매질을 해야만 정사에 해롭겠는가? 고을을 맡은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정선(鄭瑄)이 말했다. "인간의 총명은 유한하고, 살펴야 할 일은 한이 없다. 한 사람의 정신을 쏟아 뭇 사람의 농간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술에 빠지고 여색을 탐하며, 시 짓고 바둑이나 두면서 마침내 옥사나 송사는 해를 넘기고 시비(是非)가 뒤바뀌어, 소송은 갈수록 많아지고 일거리는 날마다 늘어난다. 어찌 탄식하지 않겠는가?"
모두 '목민심서' 율기(律己) 중 '칙궁(飭躬)'에 실려 있는 예화다. 어찌 목민관만의 일이겠는가? 과도한 음주는 끝내 문제를 일으킨다. 술에 취해 자기가 한 성폭행과 성추행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는 TV 드라마의 어느 남주인공은 이 실수 한 번으로 시청자뿐 아니라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단 한 번 실수로 치러야 할 대가가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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